보성군 (왕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Abend (토론 | 기여)
잔글 잘못된 링크 수정, 불필요한 한자 삭제
SotialeBot (토론 | 기여)
58번째 줄:
특히, 세조(世祖) 때에는 무관으로 활동하여 도진무(都鎭撫), 해청위(海靑衛), 선전관(宣傳官), 좌상대장(左廂大將) 등으로 공헌하였다. [[1467년]] 다시 보성군에 책봉되었으며 [[1468년]]에는 좌상대장(左廂大將)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예종|예종]] 즉위 초에는 장군 [[남이]]와의 친분관계로 인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 뒤 [[조선 예종|예종]]의 급서로 위기를 모면하고 [[1469년]]에 풀려나 임명장을 돌려받고 과거의 관직으로 복직되었다. 그뒤그 뒤 특별히 [[1499년]](연산6) 종친의 최고품계인 정1품 현록대부(顯綠大夫)까지 올랐다. [[1499년]](연산군 6년) [[9월 1일]]에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시 ‘시호와 예장을 받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