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드 메디시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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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신성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제국)|페르디난트 1세]]의 막내딸인 [[오스트리아의 지오바나|요한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1600년 10월에 [[프랑스의 앙리 4세|앙리 4세]]는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의 재정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정략적 목적으로 당시 27살의 마리와 재혼함으로써 15만 파운드의 막대한 결혼지참금을 손에 넣었다. 앙리 4세는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했었기 때문에 부재가 잦았던 데다가 당초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마리의 궁정생활은 고독이 항상 뒤따라다녔다고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리의 낭비는 해가 갈수록 심해졌고, 하루종일 값비싼 보석을 구입한 결과 모처럼의 결혼지참금이 거의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1601년, 그토록 바랐던 왕위계승자인 왕태자 루이(나중의 [[루이 13세]])를 낳았으며
[[파일:Peter Paul Rubens 050.jpg|250px|thumb|루벤스 작, 마리 드 메디시스의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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