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교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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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통치이념으로서 [[유교]]가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교육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교를 존수하는 군주였던 [[고려]]의 역대 왕들은 유교적 국가로서 손색이 없도록 문물제도의 정비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에서도 교육제도의 완비를 국가의 최우선적 과제로 인식하였다.
 
또한 [[고려]]의 교육은 [[과거 제도]]와 유리되어서는 올바로 이해하기 얼벼다어렵다. [[고려 광종|광종]] 때 [[송나라|중국]]으로부터 도입된 과거 제도는 [[유교]]적 소양을 지닌 인재를 관리로 선발하고, 귀족들 간에 경쟁관계를 조성함으로써 이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길러 과거를 통해 선발한다.”라는 교시가 시사하는 것처럼 고려의 교육제도는 과거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특히 당대의 과거제도는 교육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원활하게 운영될 수 없었기 때문에 고려의 역대 왕들은 교육제도 확충을 위한 노력을 끊임 없이 하였다.
 
한편 [[고려]]는 여러 [[호족]] 세력들을 기반으로 성립되었던 관계로 [[고려 태조|태조]]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호족 세력들은 특권층으로 자리 잡아 갔고, 고려 왕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부담스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세력을 어떻게 회유하느냐 하는 것은 왕권 안정의 관건이었던 것이며, 고려의 지방 교육제도 성립은 이러한 호족들을 회유하고 통제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