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예지드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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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예지드 1세가 [[아나톨리아]]에 할거하던 튀르크계 여러 제후국을 차례로 병합해 나아가자, [[1400년]] 아나톨리아 세력은 동아나톨리아에 진출한 [[티무르]]을 의지하게 되었다. 티무르는 바예지드 1세에게 "아나톨리아의 여러 제후에게 옛 영지를 돌려주어라"란 요구를 했다. 이것을 거절한 오스만 제국은 [[티무르 제국]]와 대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402년]] 바예지드 1세는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에게 대패해 포로가 되었고, 다음해 [[1403년]] 티무르에게 정중한 대우를 받았지만 실의속에 감옥에서 병사했다. 바예지드 1세의 죽음에 대해선 자살설과 살해설이 각각 있다.
 
그후그 후 발칸반도 주변은 오스만 제국에게 복속했던 제후들이 하나둘씩 이반하기 시작했고, 아나톨리아에서는 바예지드 1세에게 멸망당했던 여러 제후국이 티무르의 손에 의해 부활하였다. 오스만 제국에게 남겨진 영토는 티무르에 의해 바예지드 1세의 세 아들들에게 분할하였다. 무라트 1세 이전의 지배영역뿐이지만 이것도 루멜리아를 통치한 장남 쉴레이만 체레비가 유럽쪽을 지배하고, 아시아쪽은 그의 동생들인 아마샤를 통치하게 된 메흐메트와 부르사에 위치한 이사에 의해 분할지배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분열과 공백기간은 [[1413년]] 바예지드 1세와 더불어 티무르에게 잡혔다가 석방된 막내동생 무사를 합쳐 4형제의 다툼 끝에 메흐메트(1세)의 승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