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식민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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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 호는 스피드웰 호와 합류하기 위해 영국의 [[사우스햄턴]]에 기항하여 식량과 다른 승객들을 태웠다. 사우스햄튼에서 일행에 참가했던 승객 중에는 일년의 내내 숨어 지내야 했던 윌리엄 브루스터를 포함한 몇 명의 필그림과 필그림들에게 "이방인"라고 볼 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후자의 집단의 대다수는 머천트 어드벤처러스 모집에 응시한 이들로 식민지 통치를 실시함과 동시에, 식민지를 시작하는 추가적인 인력으로 자리 매김했다. 이방인의 중에는 식민지의 군사 지도자가 될 ‘마일즈 스탠디쉬’, 대서양 항해 중인 지휘자가 되는 머천트 어드벤처러스에 임명되었던 ‘크리스토퍼 마틴’, 그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식민지 경영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스테판 홉킨스’가 있었다.<ref>Philbrick (2006) pp 24-25</ref>
 
[[파일:Embarkation-Weir.PNG|thumb|left|필그림의 출발]]메이플라워 호와 스피드웰 호의 미국 출발은 계속 지연되었다. 머천트 어드벤처러스와 의견 불일치로 사우스햄턴에서 잠시 머물렀다. 총인원 120명의 승객들은 메이플라워 호에 90명, 스피드웰 호에 30명이 나눠타고 [[8월 15일]] 드디어 출항했다.<ref>Addison (1911), pp 63</ref> 사우스햄턴을 출발했지만, 스피드웰 호에 심각한 누수가 발생하여 즉시 [[다트머스]]에 귀항할 필요가 생겼다. 수리가 완료되었지만, 순풍을 얻지 못해 항해는 또 한차례 지연되었다. 두 척의 배는 랜즈 엔드 곶을 지나서 200마일도 가지 못해 스피드웰 호에 다시 누수가 발생하여, [[잉글랜드]]의 [[플리머스 항구]]로 가야 했다. 스피드웰 호가 항해에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민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메이플라워 호로 갈아 탔으며, 이미 적재량이 많았던 선박이 더욱 혼잡하게 되었다. 그후그 후 스피드웰 호의 선장이 믿을 수 없는 대서양 횡단 항해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파업을 했다고 한다는 풍문이 퍼졌다.<ref>Philbrick (2006) pp 27-28</ref>
 
메이플라워 호는 102명의 이민자를 태우고 [[1620년]] [[9월 6일]] [[플리머스]]를 출항했다. 함께 가기로 한 스피드웰 호 없이 허드슨 강 하구에 이주하는 것을 인정한 토지증서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출발했다. 도중에 강한 서풍을 만났고,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항해는 2개월이 소요되었다. [[11월 9일]], 케이프 해안에서 육지를 발견했다. 메이플라워 호는 지정된 허드슨 강 하구의 위치에 도착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케이프코드]]와 낸터컷 섬 사이의 얕은 물, 포락크리프 해역에서 장애가 일어났다. 겨울에 다가오는 시기이며, 식량도 위험수위까지 바닥을 드러낸 상황이었기 때문에, 승객은 북쪽으로 돌아와 당초 상륙 계획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