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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군인 정보 |이름=고연수(高延壽) |생애= |그림= |별명= |태어난 곳= |죽은 곳= |설명= |복무=고구려 |복무기간= |최종 계급=북부 욕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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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수'''(高延壽)(? ~ ?)은 [[고구려]](高句麗) 말기의 무장으로 [[고구려-당 전쟁]]때 북부욕살로 활약하였으며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당태종이 645년 고구려를 침략하여 요동성(遼東城)을 함락하고 이어 안시성(安市城)을 포위하자, 고구려는 당시 남부욕살(南部褥薩) 고혜진(高惠眞)과 북부욕살이던 그를 파견하여 안시성의 군사를 돕도록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 15만여명을 거느리고 당군에 맞서 나아갔다.
 
고구려 진영에서는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대대로 [[고정의]]가 고연수에게 말했다.
"당태종은, 안으로는 여러 영웅들을 쳐 없애고, 밖으로는 오랑캐들을 굴복시켜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이는 세상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은 인재이다. 지금 그가 전국의 군사를 이끌고 왔으므로 이에 대적할 수는 없다. 나의 계책은, 군사를 정비하되 싸우지 않고, 여러 날을 두고 지구전을 펴면서 기습병을 보내 그들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저들은 군량이 떨어지면 싸우려 해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 해도 갈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 때만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때이다."
 
하지만 고연수는 이 말을 듣지않고 당군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3만여 군사를 잃고 포위되어 결국 고혜진과 함께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당태종은 고연수를 홍려경(鴻臚卿)에 임명하였다.
 
그 뒤 안시성전투에서 당군의 피해가 계속되자, 이때 고연수·고혜진 등이 당 태종에게 "저희들이 이미 대국에 몸을 맡겼으니, 정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빨리 큰 공을 이루어 우리가 처자와 만나게 하여 주기를 원합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여 자진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에 빨리 함락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고구려의 10여 만 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깃발을 보는 것만으로 사기가 꺾여 허물어졌으며,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하였습니다. 오골성의 욕살은 늙어서 수비가 견실할 수 없으니, 군사를 옮겨 그곳을 공격한다면, 아침에 도착하면 저녁에는 승리할 것이며, 도중에 있는 여타의 작은 성들은 위풍만 보고도 반드시 허물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연후에 그곳의 자재와 군량을 거두어 북을 울리며 전진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평양을 지켜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안시성 대신 오골성을 직접 공격할 것을 주청하였다.
 
하지만 그 계책은 당나라의 장군 장손무기(長孫無忌)의 반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뒤 당군과 같이 전장에 있었는데, 자신의 행동과 처지를 비관하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