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 전투 (151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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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 포위라는 급보를 접한 교황군은 전력을 기울여 라벤나로 향했다. 복병을 주위하며 신중하게 전진한 교황군은 프랑스군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외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교황군의 총 사령관은 스페인의 명장으로 알려진 [[곤살로 데 코르도바]]의 후계자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던 라이몬드 카르도나였다. 그는 코르도바가 완성시킨 보병 밀집대형 [[테르시오]]을 이용한 보병 밀집전술이 특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총을 조직적으로 사용한 스페인군이기에 소총대가 제일 앞열에 전개하였다.
 
교황군이 온것을 안 가스통은 중세의 습관대로 카르도나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카르도나는 이 도전장을 받아들이고 결전은 다음날 4월 11일 아침으로 결정되었다. 그날밤 교황군은 프랑스군 앞쪽으로 진출해 참호을 파기 시작했다. 부사령관 [[페드로 나바로]는 숙달된 무장인 동시에 보병전술에 뛰어난 기술관이기도 했다. 백병전 시작시 보병을 엄호할 수 있는 참호 1선, 2선을 만들고 그 앞쪽에 무수한 장애물을 설치해 프랑스군 보병이 장애물때문에 전진이 멈출시 사격을 가하고 그곳에 중장기병으로 밟아버린뒤 마지막으로 밀집대형으로 적을 섬멸해 버린다는 것으로 적의 소모을 기다려 반격으로 전환하는 전법이었다.
 
가스통은 2,000의 병사를 남겨 라벤나에 대한 견제역할을 맡기고 론강을 건너 황제군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병력을 포진시켰다. 방어중시의 스페인군에 대해 가스통은 젊은 용장답게 공격일변도의 진형을 취했다. 중앙에 합쳐서 18,000명의 보병을 배치하고, 우익에 흑색갑옷을 빛내는 중장기병이 포진했다. 좌익에는 경장기병을 배치하고 후방 론강에 설치된 다리에는 일부 중장기병을 예비대로써 준비시켰다. 보병대형도 교황군과 달리 좌우양익에 3,000명 중앙에 약 8,000명을 배치하고 대형을 전체을 원을 그리듯 반원을 그려 교황군 중앙에 초점을 맞춘 볼록렌즈 형태의 모습으로 중앙돌파을 노리는 대형이었다.
 
아침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스통은 프랑스군 전면에 배치한 포병대에게 포격을 지시했다. 프랑스 포병대는 스페인군을 향해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고, 굉음과 화약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날아간 철탄과 석탄은 스페인 보병대형에 떨어져 파편을 날리며 주위의 보병들을 살상했다. 이에 대항해 스페인군 포병대도 포격으로 맞대응했다. 양쪽간의 포격전은 그로부터 무려 1시간이상 계속되었다. 이때까지의 전투에서 이렇게까지 장시간의 포격전이 계속된 일은 없었다.
라벤나 전투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격준비 전단계에서 대규모의 포격전이 일어난것으로 전사상 처음있는 일인것이다.
 
포격전 속에서 스페인 보병은 참호에 몸을 숨겨 다행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으나 기병은 아니었다.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이 포격에서 큰 피해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가스통은 포병대에서 2문의 대포를 빼내어 이동시켜, 교황군 중장기병대를 가로질러 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시키고는 포격을 가했다. 앞쪽과 측면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초조함이 극에 달했고, 보다못한 기병대 지휘관 코르도나 경(卿)이 독단으로 돌격명령을 내렸다. 중장기병 1,700기가 그 무서운 돌격력을 무기로 프랑스군 전열에 달려들어갔다.
 
상식대로라면 이들은 프랑스 보병이나 포병대에 돌격해 분쇄할 수 있었으나, 중세이래 명예를 중시하는 기병들에게 전장에서 상대는 오로지 자신들과 같은 기병이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 때문에 교황군 중장기병의 목표도 프랑스군 상세베리노 추기경이 지휘하는 프랑스 중장기병대였다. 추기경 또한 명령을 내려 이에 맞섰다. 그때까지 프랑스 중장기병은 아직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기병VS기병의 맞대결은 금새 통제를 잃어버리고, 삽시간에 격전에 휘말렸다.
 
한편 전황 전체를 놓고 본다면 코르도나의 돌격은 변수에 속했다. 중장기병의 압력에 달아났던 데스테 장군은 다시 부하를 독려해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고, 이 포격은 교황군 보병 머리위를 지나 후방에 있던 교황군 경기병을 강타했다. 이 포격에 피해를 입은 교황군 경기병에게 돌격명령이 내려졌다. 목표는 프랑스군 전면에 있던 포병대였다. 교황군 경기병대의 돌격을 보고 프랑스군 좌익의 경기병대 지휘관 로드렉크의 명령으로 경기병 3,000기가 교황군 경기병대와 맞붙었다. 하지만 교황군 경기병대의 숫자는 1,500기에 불과해 2배에 달하는 적의 공격에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 전기(戰機)을 보고 가스통은 보병에게 전진명령을 내렸다. 중앙대 후방에서 트럼펫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프랑스군 보병대가 움직였다. 교황군은 사정거리 내에 적이 들어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세사격을 퍼부었다. 이 공격에 앞열에 있던 프랑스군 병사가 무수히 쓰러졌지만 소총의 장진속도로는 프랑스군의 전진을 늦출 수 없어 얼마안가 환성과 함께 프랑스군이 참호선에 들어오면서 처절한 백병전이 펼쳐졌다. 피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격전이 펼쳐졌고, 그 사이 중장기병도 피을 피로 씻는 전투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병력에서 우위를 점한 프랑스군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때 교황군 전면에 나온 프랑스군 대포 2문이 포격을 가해 양군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교황군 후방 방위선을 때렸다. 이 공격에 균형이 깨지면서 교황군 보병대는 공포에 빠져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것을 눈치챈 가스통은 그때까지 후방 다리위에 있던 예비 중장기병대을 양군의 중장기병이 사투를 벌이는 곳에 전격적으로 투입시켰다.
 
프랑스군 예비 중장기병대의 투입에 기진맥진해 있던 교황군 중장기병대는 삽시간에 무너졌고, 이 여파는 모든 전선에 영향을 미쳤다. 교황군은 모든 전선에 걸쳐 붕괴가 시작되었고, 가스통은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 추격을 명령했다. 참호에서 나와 탈출하는 교황군 보병을 쫓던 프랑스군 앞에 그러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부대도 있었다.
 
승리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말을 몰고 돌진하던 가스통에게 스페인군 보병의 창이 찔러왔다. 가스통은 옆구리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말에서 떨어졌고, 이 젊은 용장을 향해 무수한 창이 찔러들어왔다. 승리을 목전에 두고 가스통은 전사했다.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