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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이 편집과 경영의 실질적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주요 논설의 대부분은 그가 집필했다. [[박은식]], [[신채호]]등 애국지사들의 논설도 많이 실었다.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 애국운동을 주도했으며, [[1904년]] 4월에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치했다. 이 신문은 항일논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야욕을 폭로하며, 항일논조를 견지했다. 조선민중들의 민족의식을 드높여 신교육과 애국계몽운동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자임하였으며 간교한 통감부의 방해공작에도 불구, 1910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로 전락하기까지 고종의 강제퇴위와강제 군대해산의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의 부당성, 그리고 일제의 야만적 행위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등 끊임없는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면으로 저항하자, 일제는 창간주 베델을 [[1907년]]과 [[1908년]] 2차례에 걸쳐 재판에 회부했다. 실질적 책임자인 [[양기탁]] 또한 국채보상의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다.
 
베델이 일제의 탄압과 싸우는 가운데 [[1908년]] [[5월 27일]]부터 발행인 명의가 영국인 만함으로만함(萬咸, Alfred W. Marnham)으로 바뀌었다. [[1909년]] [[5월 1일]] 베델이 죽고 난 후, [[1910년]] [[6월 1일]]부터는 발행인이 [[이장훈 (언론인)|이장훈]]으로 변경됐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로 전락했다.
 
[[분류:대한제국의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