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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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 6일]], 스탈린이 사망한 다음 날 저녁 공산군들은 모든 전선에서 불꽃과 신호탄을 하늘에 올렸으며 각 병사는 스탈린에 대한 고별인사로 동시에 공중을 향하여 조총 사격을 하였다.<ref>전쟁기념사업회, 《한국전쟁사 제1권》(행림출판, 1992) 436쪽. </ref> 스탈린의 사망은 동서해빙과 외부 세계에 대한 소련 지도층의 새로운 접근 방식과 태도 변화를 초래했다.
 
[[김일성]]은 남한을남한에서 점령할미국이 손을 있다는때고 일본으로 철수할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이 진심으로 전쟁을 시작하자 전황을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드디어 전쟁 종결과 평화 달성의 주도권을 잡을 시기가 왔다며 좋아했다. <ref>이동현, 〈정전협정 50년:52년 수풍댐 폭격맞자 북지도부 '공황'〉,《중앙일보》(2003.7.25.) </ref> 스탈린은 전쟁을 종결하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자신의 경고를 듣지 않자 지원을 감소시켰다. 또한 [[김일성]]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확신하여 경계하게 된다.
 
[[1953년]] [[3월 19일]] 스탈린은 [[소련]] 각료회의에서 [[한국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익에 배치된다며 이른 시일 내에 정전협상을 마무리지을 것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