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그런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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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br />
포스트그런지 밴드는 그런지의 특성과 음악을 본받았으며, 두텁고 찌그러진 소리의 기타음(주-디스토션 distortion)이 라디오 방송에 좀 더 유리했고 더 상업적이었다. 초기 그런지 밴드와 달리, 이들은 메이져 음반사를 통해 활동했고, 쟁글팝(주-종 울리듯 징징징하는 기타음, 전체적으로 통통 튀는 느낌의 팝 쟝르), 팝 펑크, 얼터너티브 메탈, 하드 락이 주는 다양성을 음악에 적용했다.
포스트 그런지라는 용어에는 경멸,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고 자신들이 단순히 음악적으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걸 비웃으며 정통 락음악을 냉소하는 반응에서 나왔다.<br />
 
'''역사'''<br />
너바나는 인기 최정상(네버마인드를 발표한 1991년)일 때 그런지 음악에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갖가지 곤란에 봉착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는 커트 코베인의 마약 중독 사건과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초 커트 코베인의 사진이 티셔츠 앞판에 “그런지는 죽었다”라는 문구와 더불어 프린트되었는데, 이때 이 쟝르는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논쟁이 널리 퍼졌다. 그가 1994년 봄 사망하고 그룹 펄 잼의 투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런지 음악은 그 해를 끝으로 퇴장을 고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약 문제를 겪은 레인 스탠리(그룹 앨리스인체인)의 경우엔 그 때문에 1995년 밴드 공연 스케쥴이 취소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초기 개척자 역할을 했던 그런지 밴드들이 좌절을 겪자 대형 음반사들은 이 쟝르와 비슷한 다른 밴드들과 계약을 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포스트 그런지란 용어가 이때부터 동전 찍어내듯 사용되어 이런 밴드들을 지칭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