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가노쓰보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Abend (토론 | 기여)
20번째 줄:
또 이에미쓰가 쇼군이 된 후에는 그의 유모라는 배경으로 [[로주]]를 능가하는 권력을 휘두르며 [[오오쿠]]를 총괄하였다. [[1629년]] 이에미쓰의 천연두 치유를 기원하기 위한 [[이세 신궁]] 참배 여행 중 교토로 가게 된다. 그러나 무가인 사이토가의 딸이라는 신분으로는 조정에 들어갈 수 없어 사망한 양아버지의 아들과 의남매기 되어 산죠니시 가문의 딸이라는 자격으로 천황을 배알하고, 종3위의 지위와 가스가노 쓰보네의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 시기의 천황이었던 [[고미즈노오 천황]]은 이 굴욕을 견디다 못해 천황 자리를 버리고 만다.
 
그 후 이메미쓰의이에미쓰의 후사를 잇는 일에 전력을 다하여 [[에이코인|오만노가타]], [[호쥬인|오라쿠노가타]]([[도쿠가와 이에쓰나]]의 생모), [[쥰쇼인|오나츠노가타]]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할머니) 등을 오오쿠에 불러들여 이에미츠의 측실로 삼게 했다. 생전에 이에미쓰의 정실과 오만노가타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였다. 특히 이에미쓰와 이에미쓰의 정실의 불화로 이에미쓰의 정실이 니노마루로 건너가 생활하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무사 가문이라는 출신의 영향으로 평소에도 검소함을 중요시 했다. 따라서 그녀가 총괄했던 [[오오쿠]]내에서도 검소한 풍토를 중시하여 엄격하게 통제했다고 한다.
 
[[1643년]] 9월 향년 64세로 사망했다. 그녀의 사세구(辭世句)는 「(서(西)로 들어가는 달을 꾀어 불법(佛法)의 길을 따라 오늘이야말로 속세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일본어]]: 西に入る 月を誘い 法をへて 今日ぞ火宅を逃れけるか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