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 교육의 확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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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틸리오네가 제시한 인물의 전형적인 사례는 우르비노의 대공이었던 프레데리고(Frederigo)였다. 사실, 프레데리고는 카스틸리오네의 제자로, 만토바에 있던 비토리노의 기쁨의 집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기쁨의 집을 졸업한 프레데리고는 카스틸리오네의 지도를 받았다. 프레데리고는 카스틸리오네에게서 배운 것들을 실천으로 옮겼고, 이를 통해 자신이 다스리는 공국을 학문과 교육의 명성이 높은 국가로 키워냈다. 이전 세대 인사인 비토리노가 학자로서 문학에 대한 사랑의 입장에서 학자와 기사의 두 가지 인간상을 결합시키려 했다면, 프레데리고는 정치가로서 학자와 기사라는 두 인간형을 통합하여 통치의 정신을 문학과 예술에서 얻는 ‘학자 기사[Scholary Knight]’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탄생시켰다. 프레데리고의 이러한 시도는 유럽에서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형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었으며, 카스틸리오네가 아닌 프레데리고에서 ‘학자 기사’라는 인간형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카스틸리오네의 공적은 프레데리고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프레데리고의 후계자가 집권하고 있는 우르비노의 궁정에서 부역한 카스틸리오네는 프레데리고가 남긴 위대한 학자 기사라는 인간상의 상속자가 되었으며, 궁정인의 개념을 글로 남김으로써 이 새로운 이상을 후대에 전해지게 하였다. 카스틸리오네의 이러한 공로로 학자 기사의 이상을 유럽 교육의 공동 유산의 일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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