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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溫'''(환온, [[312년]] ~ [[373년]])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国時代)의 [[동진|동진(東晋)]]의 정치가, 군인, 재상. 字는 원자(元子). 군사적 성공을 거듭해 동진(東晋)을 좌지우지하며 황제의 자리까지 넘봤지만 주변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아비는 환이(桓彝), 동생은 환운(桓雲), 환활(桓豁), 환비(桓祕), 환충(桓沖). 아들은 [[환현|환현(桓玄)]].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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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년]], 유량(庾亮<ref>유량(庾亮): 도간(陶侃)이 창설한 서부군단(西府軍団-[[양쯔강]] 중류지역 방비군)의 군단장</ref>)의 동생 안서장군(安西将軍) 유익(庾翼)이 죽자 환온(桓溫)은 그의 후임으로 안서장군(安西将軍) 겸 형주자사(荊州刺史)에 기용되어 [[무한(武漢)|무창(武昌)]]을 수비했다. 강대한 군사력을 거머쥔 실력자로 성장한 환온(桓温)은 [[347년]]에 손성(孫盛) 대도독의 지휘를 받아 [[쓰촨 성|사천(四川)]]의 [[성한|성한국(成漢國)]]<ref>('''成漢''', 성한, 병음(拼音):Chéng Hàn, [[304년]]~[[347년]]) 성한국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国)의 하나로 저족(氐族)의 일파인 파종(巴賨)족(族)의 이웅(李雄)이 건국한 나라. 후촉(後蜀)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호(國號)는 초기엔 '成'이었지만 후에 '漢'으로 변경해서 이를 합쳐 성한(成漢)이라 불림</ref>을 멸망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이 때의 공훈으로 정이대장군(征西大将軍)으로 승차(陞差-<small>임금이 벼슬을 높여줌</small>)했다. [[351년]] 음력 12月에는 북벌(北伐)군을 독자적으로 결성, 무창(武昌)에 집결만 시켰는데도, 그 위세에 놀란 [[염위|염위국(冉魏國)]]<ref>('''冉魏''', 염위, 병음(拼音):Rǎn wèi, [[350년]]~[[352년]]) 염위국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国)의 하나로 한족(漢族)인 염민(冉閔)이 건국한 나라. 국호(國號)는 위(魏) 한 글자였지만 위(魏)를 국호로 내세운 나라가 많았기 때문에 건국자인 염민(冉閔)의 성을 붙여 다른 위(魏)나라와 구분한다.</ref>의 서주자사(徐州刺史), 연주자사(兗州刺史), 예주목(豫州牧), 북형주자사(北荊州刺史)가 싸워보지도 않고 환온에게 차례차례 귀순(歸順)했다. 또한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로 동진(東晉)에 명성을 떨쳤던 차윤(車胤)이 형주에 부임(赴任)중이었는데 학문도 높고 백성들 사이에 명성도 높은 그를 자신의 측근으로 등용함으로써 대권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파죽지세로 불어나는 환온의 힘에 위기감을 느낀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ref>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의 7남이자 차기 황제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馬曜)의 친동생. 황실에 위협이 되는 강력한 신하가 나올 때마다 황제 대신 견제를 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인물. 환온(桓溫)의 위협도 잘 방어했고 뒤이은 사안(謝安)의 잠재적 위협 역시 미연에 잘 방지해내 종묘사직을 지켜냈다. 그러나 환온과 사안의 사후(死後), 환온의 아들 환현에게 기습을 당해 살해된다.</ref>가 환온의 죽마고우인 은호(殷浩)를 등용, 북부군(北府軍-<small>동진(東晉)이 북벌을 위해 창설한 군대</small>) 대장에 추천하여 환온의 대항마로 삼았다. [[352년]] 음력9월, 은호(殷浩)는 동진(東晋)의 숙원이었던 북벌(北伐)을 환온보다 먼저 상주(上奏)하여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군을 북쪽에 진군시켜 [[쉬창 시|허창(許昌)]]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부하가 적에 내통을 하여 [[후진 (오호 십육국)|후진(後秦)]]의 대장 요양(姚襄)에게 참패하였다. 환온(桓温)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패장(敗將) 은호(殷浩)를 탄핵(弾劾)하여 실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