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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楊勇, [[564년]]경 ~ [[604년]])은 중국 [[수나라]] 최초의 [[황태자]]이며, [[양견|수 문제 양견]]과 [[독고황후|문헌황후 독고씨]]의 장남이다.
 
[[북주]] 때에, 조부 [[양충]]의 공으로 박평후에 봉해졌다. 이후, [[580년]]에 아버지 양견이 승상 겸 수왕에 봉해지자, 수왕세자(隋王世子)에 책봉되었고, 그 이듬해인 [[581년]]에 아버지가 황제가 되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양용은 원래 우직한 성격이었고 배포가 컸다. 또한, 여색을 좋아하였는데 양용의 부인인 황태자비가 죽었는데도 양용은 여색에 빠져 아내가 죽었는지도 몰랐다. 이로 인해, 모후인 독고황후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으며, 아우인 진왕 [[양광]]의 꾀에도 많이 넘어갔었다.
 
양용은 한편으로는 군사들을 모아 동궁의 친위대로 삼고, 매일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아버지 양견이 독고황후가총애하던 자신이궁녀를 총애하던독고황후가 궁녀를죽이자 죽여양견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황궁을 나갔는데, 이때 양광이 양용에게 황궁의 수비를 담당하라 일렀고, 그 다음날에다음날 양견이 돌아오자돌아와 양용은 매우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600년]]에 이부시랑 [[소좌보]], 태자가령 [[주문동]] 등과 연무장에 나눈 얘기들이 양광 일파에 의해 역모로 변질되었고, [[600년]] 12월에 양용은 결국 황태자에서 폐위되고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이 때, 상서좌복야 [[고경]]이 양견을 말렸으나, 독고황후의 설득으로 결국 승인되었다.
 
양용은 이궁에 갇혀 신태자 양광과 친한 무위장 [[장형]]의 감시를 받았다. 심지어 장형은 양용에게 음식도 음식도 주지 않았다 하며, 의관이 누추한 것이 노비보다도 못하였다 한다.
 
[[604년]]에 부황 양견의 병이 위중하자, 양광은 무위장 장형을 시켜 아버지 양견을 살해했으며, 뒤이어 양광은 자신의 근위장 [[우문지급]]을 보내어 양용을 목졸라 죽였다.
 
참고 - 양견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즉위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채택되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양견이 시역(弑逆)을 하였는가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
 
{{토막글|중국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