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무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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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무 천황은 종교나 초자연적인 힘에 관심이 많고 신불에 대한 믿음도 두터웠다. 《고사기》에는 덴무 천황이 꿈 속에서 들은 노래의 내용을 풀이하여 한밤중의 물에 던져, 자신이 황위에 오를 것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천문둔갑에 뛰어났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임신의 난에서는 스스로 점을 쳐서 장차 천하가 양분될 징조를 예측했다거나 여러 신들에게 기도하여 뇌성폭우를 그치게 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모두 도교적인 기능이다. 즉위 뒤에도 종교나 의식에 대한 관심은 잦아들지 않았으며, 운세의 활용이나 신불에 대한 기원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이러한 예언자적 능력은 후세에 천황이 사람들 사이에 신이나 다름없는 카리스마성을 몸에 지니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덴무 천황이 읊은 와카는 후지와라 부인과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과 요시노의 '요시'를 반복하는 노래, 그리고 요시노의 외로운 길을 노래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한시를 읊었다는 사료는 없다.<ref>단지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것 뿐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냥 천황의 취향이 한시보다는 와카에 더 흥미가 있었던 탓으로 보기도 한다.</ref> 천황의 취미는 수수께끼 내기와 같은 서민적인 모습이 많았는데, 덴무 14년([[674년]]) 9월 18일에 황궁 대안전에서 바쿠치(博戯) 대회를 열기도 하는 등의 유협적인 모습도 지녔다. 위에서 든 각종 예능자에게 대한 후대도 천황의 기호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천황이 민심을 살피는 데에 뛰어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분랴쿠 2년([[1235년]])에 덴무·지토 합장릉이 도굴당했을 때의 조사기록인 《아후노야마료우키(阿不之山陵記)에는 생전 덴무 천황의 체격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도굴시 외부에 노출된 덴무 천황의 유골은 머리가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크고 검붉은 색을 하고 있었으며, 정강이뼈는 한 자 여섯 치(48cm), 팔꿈치 길이가 한 자 네 치(42cm)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추정한 천황의 키는 175cm 정도로 당시로서는 꽤 큰 편이었다고 보인다. 당시의 구교였던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사다이에의 일기인 《메이게쓰키》(明月記)에는 무덤의 유골에 뼈와 흰 머리카락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덴무 천황의 사망에서 대략 7백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