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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조부는 후한 말기에 청렴결백으로 이름을 떨친 [[양상군자|진식]](陳寔)이며, 아버지는 [[진기]](陳紀)이다. 아들로는 [[진태]](陳泰)가 있다. 또한, 위나라의 중신인 [[순욱 (후한)|순욱]](荀彧)의 사위이다. 주로 위나라 법제의 정비에 공헌했다. 특히, 그가 주창한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은 이후 [[수나라]]에서 본격적인 과거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각 왕조에서 관료를 뽑는 등용기준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진식에게 장래를 인정받았으며, 오만하기로 이름났던 [[공융]](孔融)과도 친분이 있었다. 한때 예주에 체재하고 있던 [[유비]]에게 발탁되어 벼슬을 하기도 했다. [[194년]], 서주자사 [[도겸]](陶謙)이 죽고 서주를 [[유비]](劉備)가 영유하려고 하자 "남쪽에서 [[원술]](袁術)이, 서쪽에서 [[여포]](呂布)가 서주를 노리고 있으니 위험합니다"라고 주청하며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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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의 관직을 겸직하게 되었으며, [[226년]]에 조비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조진]](曹眞)이나 [[사마의]](司馬懿)와 함께 위의 후일을 당부받기도 했다. 뒤를 이어 즉위한 명제(明帝) [[조예]](曹叡)때에도 중용되어, 관직이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236년]]에 세상을 떠났다.
 
 
== 진군의 친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