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군 (중국)

평양군(平陽郡)은 247년(정시 8년) 조위하동군의 북부 지역을 분리하여 신설한 군으로 현재 산시성 (산서성)의 지급시 가운데 하나인 린펀시의 전신이다.

조위 편집

후한말부터 하동군의 북부인 평양 일대는 기존의 상위 행정 구역인 사례교위부보다 병주태원군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조조는 화북을 평정한 후 병주와 옛 삭방 지역에 산재했던 흉노인들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이들을 병주 분하 일대에 정착시키고 임의로 5부를 두었다. 이 5부 중 흉노 남부 3,000여 호가 본군의 포자현 지역에 설치되었고 이로 인해 군역에는 수많은 흉노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1]

현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평양현 平陽縣 린펀시 야오두구 군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진나라때 설립되었다.
양현 楊縣 린펀시 훙둥현남동
영안현 永安縣 린펀시 훠저우시
포자현 蒲子縣 린펀시 시현 흉노 남부가 설치되었다.
양릉현 襄陵縣 린펀시 남동
강읍 絳邑 린펀시 허우마시
임분현 臨汾縣 린펀시 샹펀현 서남
북굴현 北屈縣 린펀시 지현
피씨현 皮氏縣 윈청시 허진시
호섭현 狐讘縣 린펀시 융허현남서

서진~후조 편집

12현 42,000호를 거느렸다.[2] 한나라를 세운 유연이 좌국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한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유연 사후 한나라의 후임 황제가 된 유총낙양장안을 점령한 이후 서진 민제를 이곳으로 압송시켰다. 근준이 평양에서 난을 일으켜 평양 일대에 있던 유씨를 도륙하면서 황폐화되었고 전조의 수도는 유요가 자리잡았던 장안으로 바뀌었다. 석륵이 이 근준의 난에 개입하면서 후조의 관할로 넘어갔다.

현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평양후국 平陽候國 린펀시 야오두구 요임금의 도읍이 있던 곳이다. 좌국성을 이어 한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양현 楊縣 린펀시 훙둥현남동 한때 후국이었다가 격하되었다.
단씨현 端氏縣 진청시 친수이현 북동
영안현 永安縣 린펀시 훠저우시 옛 곽백국(霍伯國)이 있던 곳으로 현동쪽에 곽산(霍山)이 있다.
포자현 蒲子縣 린펀시 시현 305년(유연 원희 2년), 한나라가 하동을 점거하고 포판, 평양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포자현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에 하동군과 평양군의 모든 속현이 항복했고 한나라의 지배권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대창군(大昌郡)으로 분리되었다.
호섭현 狐讘縣 린펀시 융허현남서
양릉현 襄陵縣 린펀시 남동 공국상(公國相)을 두었다.
강읍 絳邑 린펀시 허우마시
호택현 濩澤縣 진청 시 양청현 석성산(析城山)이 현 서남쪽에 있다.
임분현 臨汾縣 린펀시 샹펀현 서남 공국상(公國相)을 두었다.
북굴현 北屈縣 린펀시 지현 호구산(壺口山)이 현 동남쪽에 있다. 남굴(南屈)이 있는데 과거 북굴이라고 했다.
피씨현 皮氏縣 윈청시 허진시 옛 경나라(耿)가 있던 곳이다.

각주 편집

  1. 《진서》 97권 제67 흉노전[1]
  2. 《진서》 14권 제4 지리지 上 사주 평양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