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군

포천군(抱川郡)은 경기도 포천시의 이전 행정구역으로, 2003년 포천읍을 폐지하고 포천시로 승격하였다.

역사편집

  • 백제 때 마홀군(馬忽郡)이라 불리었다.
  • 신라 진흥왕 견성군(堅城郡)이라 불리었다.
  • 신라 경덕왕 다시 청성(靑城)이라 불리었다.
  • 고려 초 포주(抱州)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지금의 포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 포천은 포천현이었다.
  • 1895년 포천이 군으로 승격하였다.
  • 1906년 9월 24일: 양주군에서 산내면과 청송면을 편입.[1]
  • 1914년 4월 1일 : 영평군이 포천군에 편입되었다.[2]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포천군 군내면(郡內面) 군내면 구읍리, 명산리, 용정리, 상성북리, 하성북리, 직두리
포천군 청량면(淸凉面) 유교리, 좌의리
가산면 감암리, 마전리, 우금리
포천군 가산면(加山面) 가산리, 금현리, 마산리, 방축리, 정교리
포천군 동촌면(東村面) 내촌면 명덕리, 지현리, 화현리
포천군 내동면(內洞面) 내리, 마명리, 소학리, 신팔리, 엄현리, 진목리
포천군 외소면(外所面) 소흘면 이곡리, 무림리, 송우리, 이동교리, 직동리
포천군 내소면(內所面) 고모리, 무봉리, 이가팔리, 초가팔리
포천군 외북면(外北面) 신북면 계류리, 고일리, 삼성당리, 심곡리
포천군 내북면(內北面) 가채리, 기지리, 만세교리, 신평리
포천군 청송면(靑松面) 청산면 궁평리, 대전리, 백의리, 장탄리, 초성리
포천군 산내면(山內面) 갈월리, 금동리, 덕둔리, 삼정리
영평군 일동면(一東面) 일동면
영평군 이동면(二東面) 이동면
영평군 군내면(郡內面) 영중면 거사리, 금주리, 양문리, 성동리
영평군 읍내면(邑內面) 영송리, 영평리
영평군 하리면(下里面) 창수면 오가리, 운산리
영평군 서면(西面) 고소성리, 신흥리
영평군 남면(南面) 가양리, 주원리, 추동리
영평군 북면(北面) 영북면 대회산리, 문암리, 산정리, 소회산리, 야미리, 운천리, 자일리
12면 - 군내면, 가산면, 내촌면, 소흘면, 서면, 신북면, 청산면, 영중면, 창수면, 영북면, 일동면, 이동면
  • 1938년 1월 1일 서면(西面)을 포천면으로 개칭하였다.
  • 1945년 11월 4일 미군정 관할의 이동면을 일동면에, 청산면을 창수면에, 영중면을 신북면에 합면하였다.[3] (남: 8면)
  • 한국 전쟁으로 해방 당시 군역 모두를 수복하였다.
  •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를 편입하였다.[4] (12면)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신 행정구역
포천군 영북면, 이동면, 영중면, 청산면
  • 1963년 내촌면 화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79년 5월 1일 포천면을 포천읍으로 승격하였다.[5] (1읍 11면)
  • 1983년 2월 15일 연천군 관인면을 포천군에 편입하였고, 포천군 청산면 삼정리·갈월리·금동리·덕둔리를 신북면으로 편입하였고, 포천군 청산면(청산면 중 삼정리·갈월리·금동리·덕둔리를 제외한다)을 연천군으로 편입하였고, 내촌면 화현리·지현리·명덕리를 관할로 화현면을 신설하였다.[6] (1읍 12면)
  • 1996년 2월 소흘면을 소흘읍으로 승격하였다. (2읍 11면)
  •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 일원을 관할로 하여 도농복합형태의 포천시가 설치되었다.[7] 포천읍을 폐지하고, 포천동, 선단동을 설치하였다. (1읍 11면 2행정동)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대한제국 칙령 제49호 (1906년 9월 24일)
  2.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3. 군정법률 제22호 시도직제 (1945년 11월 3일)
  4.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1954년 10월 21일)
  5. 대통령령 제9409호 미금읍등53개읍설치에관한규정 (1979년 4월 7일)
  6. 대통령령 제11027호 시·군·구·읍·면의관할구역변경및면설치등에관한규정 (1983년 1월 10일)
  7. 법률 제6928호 경기도양주시·포천시도농복합형태의시설치등에관한법률 (2003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