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군

풍기군(豊基郡)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서북지역에 있던 옛 행정구역이다. 폐지 전에는 옛 은풍현(殷豊縣)지역인 예천군 효자면은풍면지역까지 뻗쳐있었다.

(흔히 안동이 양반도시라고 하는데 사실 1909년까지 양반의 수는 경북에서 경주군이 1위이고 그 다음은 풍기군이였다.

안동은 7위에 머물러있다.)

1909년 양반가구 조사
지역 양반 가구(1909년 기준)
경주군 2,599
풍기군 2,294
봉화군 2,213
영천군 1,526
예안군 664
선산군 473
장기군 402
안동군 337
진보군 188
상주군 133

유래편집

원래 고려시대의 기천현(基川縣)이었는데 조선초기에 은풍현을 합병히 두 글자씩 따서 지어졌다. 여기서는 은풍현과 별도로 기천현 지역만을 다룬다.

역사편집

  • 신라시대 이전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신라시대 이후 기목진(基木鎭)이 설치되었다.
  • 고려시대에 고려조정의 통일사업에 협력한 대가인지 일개 (鎭)에서 일거에 기주(基州)로 승격되었다.[1]
  • 1018년 현으로 강등당하고 길주(吉州)의 속현이 되었다.
  • 1172년 감무가 설치되었다.
  • 1390년 공양왕 2년에 은풍현을 합병했다.
  • 1413년 태종13년에 이전의 였던 관계로 州자가 들어간 고을의 이름을 山이나 川으로 개명하라는 칙령에 의해 기천현(基川縣)이 되었다가 문종대왕의 태가 매장된 곳이어서 군으로 승격되어 합병된 은풍현과 이름을 따서 풍기군이 되었다.
  • 1458년 단종북위운동으로 인해 그 진원지인 순흥부가 폐지되어 그 고지가 인근고을로 분할합병되자 그 일부지역을 병합했다.
  • 1683년 숙종 9년 순흥부가 부활하자 풍기군에 속했던 구 순흥부지역이 환원
  •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영주군에 합병되었다. 산하면들도 폐합되었다.
  • 현재 옛 풍기군 지역은 영주시 풍기읍, 안정면, 봉현면예천군 효자면, 은풍면으로 남아 있다.

1914년 이후편집

1914년의 행정구역[2]과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풍기군 동부면(東部面) 풍기면 동부동, 산법동, 성내동
풍기군 서부면(西部面) 교촌동, 금계동, 백동, 삼가동, 서부동, 욱금동
풍기군 창락면(昌樂面) 미곡동, 백신동, 수철동, 전구동, 창락동
풍기군 동촌면(東村面) 회송동/단촌동, 홍교동/대평동, 합도동/어음동, 아지동, 서제동/안심동, 오산동/배지동, 옹암동 안정면 단촌동, 대평동, 동촌동, 아지동, 안심동, 오계동, 옹암동
풍기군 생현면(生峴面) 내줄동, 내부동/외부동, 송동/생현동, 신전동/향산동, 일언동/입암동 내줄동, 봉암동, 생현동, 신전동, 일원동
풍기군 용산면(龍山面) 묵동, 도촌동/대촌동/어약동, 파지동, 여륵동 묵동, 용산동, 파지동, 여륵동
풍기군 와룡면(臥龍面) 대촌동, 신기동/두치동/우산동, 흥인동/엄현동 봉현면 대촌동, 두산동, 오현동
풍기군 노좌면(魯佐面) 월동/백산동, 유음동/이전동, 하촌동, 천동/수한동 노좌동, 유전동, 하촌동, 한천동

각주편집

  1. 고려건국시기에 고려에 협력했는냐, 반항했는냐에 따라 급이 달라지고 그 고을의 세력이 달라져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이 확연히 달라졌다. 가령 신라시대하지현(지금의 안동시 풍산읍)은 성주(城州) 원봉이 고려에 귀부해 고려 태조에 충성하자 무려 순주(順州)로 승격되었다가 원봉이 후백제의 공격을 받고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후백제가 경북일대를 석권하자 순주가 다시 현으로 강등당하기도 했다. 이 이후로 고을의 규모외에도 나라에 공헌했는나 반역했느나에 따라 고을의 승급과 강등이 이루어지는 관례가 생겼다.
  2. (신구대조) 조선 전도부군면리동 명칭 일람 (19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