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네상스

블루아 성프랑수아 1세 날개관 (1514-1527)
슈농소 성 (1515-1522)
빌랑드리 성의 복원된 파르테르(1536)
툴루즈오텔 드 바지 정면 (1610)

프랑스 르네상스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화예술 운동이다. 르네상스근세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후로 타 유럽 국가에 전파되며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르네상스의 특징으로는 삶에 대한 갈구, 인간에 대한 믿음, 지식에 대한 갈망, 자유의지정신 등이 있다. 프랑스 르세상스는 중세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형태의 문명을 추구했다. 더불어, 인쇄술를 통한 정보의 전파 가능성과 대서양 저편의 신세계 발견은 당대 인간의 세계관을 깊이 변화시켰다.[1]

프랑스 르네상스는 프랑수아 1세앙리 2세로 상징되는 왕들에게 고용된 화가와 조각가의 시대였다. 이 시기는 클로 뤼세에서 생을 끝마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시대이기도 하다만, 퐁텐블로파가 창설되고 16세기 메디치 가문이 파리에 도착한 시대이기도 하다.[2]

프랑스 르네상스는 네 시기로 나뉜다. 첫번째 시기는 루이 12세 양식(약 1495-1530)으로, 고딕 양식르네상스의 전환기를 형성한다. 허나 이 첫번째 양식은 1515년경,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입이 매우 빨랐던 루아르 계곡에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처럼, 프랑스 르네상스 제 1기, 이후의 제2기와 그 둘을 종결낸 매너리즘이라는 세 시기는 17세기 초까지의 시기를 삼분(三分)한다.[3]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편집

 
샹보르 성 (1519-1559)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문학플루타르코스, 회화장 푸케, 또는 마르세유에서 작업한 건축 분야의 프란체스코 로라나 등의 이탈리아풍이 있었지만[4], 본격적인 이탈리아풍은 이탈리아예술 부흥프랑스와의 접점을 만든 샤를 8세루이 12세이탈리아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1495년 앙부아즈에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처음으로 도착하고나서 고딕 예술은 곧바로 소멸하지는 않았으나[3] 쇠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6세기 초 몇번의 성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2세 양식의 과도적인 발달은[3] · [5] 점차 초기 르네상스를 불러왔다.[6] 1515년 무렵을 계기로 고딕 양식은 이탈리아적 기호 아래서 서서히 빛을 바래갔다.[7]

이처럼 고딕 양식은 옅게나마 이어져 왔으나, 1526년 프랑수아 1세퐁텐블로파 창설을 결정적인 계기로 고딕 양식은 종지부를 찍었다. 퐁텐블로파는 전보다 수가 많아진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새 흐름으로, 이들은 건축에서 실내 장식과 기발한 가구 배치로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프랑스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루이 12세 양식 시대와 초기 르네상스기의 건축가들은 풍부한 정열을 가진 전통주의 석공 대가들로, 1530년대부터 교양있는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530년은 이탈리아에 영향 받아 1495년부터 중세 양식을 재탄생시킨[4] 루이 12세 양식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해이자[3] · [5], 프랑스에서 1515년부터 서서히 등장하던 르네상스가 확실히 받아들여진[3] · [5] 결정적인 전환점으로서의 해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시작은 이렇게 확실한 반면, 이 시기의 끝을 언제로 삼을지에 관하여는 아직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종교 전쟁을 종결낸 1598년낭트 칙령이 르네상스의 끝을 맺었다고 보통 여겨지나, 일부 역사가들은 바시 학살제1차 프랑스 종교전쟁이 시작된 1562년을 기준으로 삼고있다. 앙리 4세암살1610년을 기준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프랑스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강력한 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을 뿌리뽑은 1477년 낭시 전투 이후 유럽에 평화가 찾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평화의 시기는 예술 창조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였으며, 샤를 3세 드 로렌 공작 치세 아래 황금기를 맞이한 로렌(낭시 공작 저택)에서, 퐁타무송 대학 설립과 중세 도시 옆에 신도시를 지은 특이한 도시계획이었던 낭시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하여 초기 르네상스가 등장했다. 로렌 공국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30년 전쟁이 벌어지자 종말을 맞는다.(1618)[8]

왕권 강화 : 제왕주권편집

프랑스에서 르네상스는 봉신들에 대항하여 왕권을 올린 중앙 집권적인 루이 11세의 치세 이후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이 시기는 종주(宗主) 국가에서 제왕주권 국가로 점차 이행하는 과도기였다.[9]

거기다 군사 기술 발전은 이 변화에 있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을 통한 방어술은, 긴 사정거리의 신무기 사석포(bombarde)로 점차 비효율적이 되었고, 그런고로 새로운 방어 체계를 구성해야만 했다.

백년 전쟁 (특히 1415년아쟁쿠르 전투) 동안 수차례 겪은 프랑스 군의 비효율성은 이러한 변화를 시사했다.[3]

중세 사회에서 자신들의 "특권"이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지역 주민들에 대한 책임을 지던 것의 보상이었던 봉건 영주들은 더이상 이러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후로 영주들은 (현대적인 의미의) 지역보다 국가에 대한 군사적 책임을 지기 시작하며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9]

종주 계급은 이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다. 그런 고로 통합된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 국왕은 그들과의 상호적 책임에 대한 재정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제왕주권설의 토대를 마련한 주요 이론가로는 장 보댕이 있다.[9]

프랑수아 1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봉건제하에서 왕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봉신들의 종주권자에 불과했다) 첫 프랑스 국왕이라 할 수 있다. 엄격한 기준에서 본다면, 절대주의낭트 칙령 (1598년)을 통해 왕권을 키운 앙리 4세와, 특히 (리슐리외의 강력한 영향 하의) 루이 13세, 그리고 보쉬에의 지지를 받은 루이 14세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1]

프랑스 르네상스의 네 시기 (1495 - 17세기 초)편집

프랑스 르네상스는 네 시기로 나뉜다. 첫번째 시기는 루이 12세 양식(약 1495-1530)으로, 고딕 양식르네상스의 전환기를 형성한다. 허나 이 첫번째 양식은 1515년경,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입이 매우 빨랐던 루아르 계곡에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처럼, 프랑스 르네상스 제 1기, 이후의 제2기와 그 둘을 종결낸 매너리즘이라는 세 시기는 17세기 초까지의 시기를 삼분(三分)한다.[3]

각각의 발전 단계를 거치며 프랑스 르네상스 예술은 이탈리아를 본보기로, 플랑드르 예술가와 특히 프랑스 예술가들이 한데 만나 어울어진 독창적인 예술성을 간직하였다. 반면 1495년부터 1610년까지 본보기였던 이탈리아의 예술은 변화를 거듭하며 프랑스에서도 콰트로첸토 후기의 예술에서, 전성기 르네상스로, 이후 매너리즘으로, 선호하는 예술 사조는 변모를 거듭했다.[3]. 이런 거듭된 교류는 풍부하고, 뒤죽박죽이며 가끔은 구분하기 어려운 예술품들을 만들어냈다. 이것들을 평가하고자 할 때에는 두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진정한 새로운 로마"였던 퐁텐블로 성 주변에서, 프랑수아 1세의 의욕으로 탄생한, 유럽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위대한 예술 중심지들과 비교해볼만한 퐁텐블로파라고도 불리던 예술의 심장이 발흥하는 와중, 16세기 중반 대작들이 탄생하면서 근대 프랑스 예술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새로운 국면은 미래를 내려다보았다. 17세기 중반 "국가" 양식(樣式)의 확립과 베르사유에서의 역할을 알린 것이다.


주해와 각주편집

주해편집

각주편집

  1.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Michelet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2.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Robert Ducher (1963). 《Caractéristiques des styles》 (프랑스어). Paris: Flammarion. ISBN 9782080113597.  .
  4. Jean-Pierre Babelon (1989/1991). 《Châteaux de France au siècle de la Renaissance》 (프랑스어). Paris: Flammarion / Picard. ISBN 978-2080120625.  .
  5. Léon Palustre (1892). 《L'architecture de la Renaissance》 (프랑스어). Paris, 7 rue Saint-Benoît: ancienne maison Quentin, Libraires-Imprimerie réunies. ISBN 9781508701187. 
  6. INHA, Le Gothique de la Renaissance Archived 2014년 4월 26일 - 웨이백 머신.
  7. Alain Erlande-Brandenburg, Architecture romane, Architecture gothique, Jean-Paul Gisserot, 2002, ISBN 978-2-87747-682-9
  8. La ville révélée - Autour de la Ville Neuve de Charles III Archived 2013년 1월 23일 - 웨이백 머신 sur www.renaissancenancy2013.
  9. Robert Muchembled; Michel Cassan (28 avril 2000). 《Histoire moderne. Les XVI et XVII siècle》. Grand Amphi (프랑스어) 1. Paris: Bréal. ISBN 978-2853947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