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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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즙(河楫, 1303년 ~ 1380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득제(得齊). 호는 송헌(松軒)이다.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으로 책봉되었다.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진주군 하즙
晉州君 河楫

고려국 의장기(儀仗旗)
고려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임기 1350년 ~ 1363년
군주 충정왕공민왕
섭정 왕태후 덕녕공주 패아지근씨(前)

이름
별명 자 득제(得齊)
호 송헌(松軒)
시호 원정(元正)
신상정보
출생일 1303년
출생지 고려 경상도 진주군
(現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
사망일 1380년 8월 9일 (78세)
국적 고려
학력 1324년 문과 갑과 3등 급제[1]
본관 진양(晉陽)
부모 아버지 하직의(河直漪)
어머니 진주 정씨(晋州 鄭氏)
배우자 진한대부인 철성 이씨
자녀 하윤원(아들)
친인척 하보(조부), 하자종(손자)

생애 편집

1303년 진주의 이구산 밑 여사촌(현재 남사)에서 출생했다. 1321년 음서(천거)로 판도좌랑(判圖佐郞)으로 출사했으며 삼사(三司)의 판관(判官)을 역임하고 이후, 1324년(충숙왕(忠肅王) 11년) 문과에 응시하여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였다. 1347년(충목왕 3) 2월에 전민(田民)의 겸병사태(兼倂事態)를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된 정치도감(整治都監)의 정치관(整治官)으로 활동하였다. 사헌부 대관으로 재임시 기황후(奇皇后)의 친족인 기삼만(奇三萬)의 불법적인 토지겸병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그가 옥사(獄死)하게 되자, 그 해 10월 원나라에서 온 직성사인(直省舍人) 승가노(僧家奴)에 의해 백문보(白文寶)·신군평(申君平)·남궁민(南宮敏) 등의 정치관들과 함께 장형에 처했다.[2] 벼슬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으로 책봉되었다. 시호는 원정(元正)이다.[3][4]

가족 편집

직계 후손 편집

평가 편집

후세에 강회백(姜淮伯)은 하즙의 초상화를 보고 평하기를 “도량이 존엄하며 성품이 화순하고 관대하였다. 그의 호연함은 가을 달과 같고 온화함은 봄바람과 같았다.”라고 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참고 문헌 편집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晋陽誌
  • 晉陽河氏大同譜(庚辰譜,2000년)
  • 《高麗列朝登科錄》
  • 하승무의 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

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