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

대한민국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하나

한강대교(漢江大橋)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잇는 다리이다. 한강에 놓인 최초의 도로 교량으로, 제1한강교라고 불리웠다. 1917년 개통된 뒤 몇 차례의 수난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다리 아래로는 노들섬이 있다. 과거에는 국도 제1호선이 이 다리를 통하여 서울로 연결되었었다.

한강대교
뒤쪽에 보이는 다리가 한강대교이다.
교통시설양녕로
횡단서울특별시 동작구용산구 사이의 한강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관리서울특별시청
구조거더교
길이1,005m
8차선
착공일1916년 3월
완공일1917년 10월
개통일1917년 10월 7일
복구: 1929년 9월 18일
임시복구: 1950년 10월
완전복구: 1958년 5월 15일
폐쇄일1925년 7월 (유실)
1950년 6월 28일 (폭파)
위치서울특별시 동작구 ~ 용산구
한강대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등록문화재
종목등록문화재 제1호
(2020년 9월 10일 지정)
수량1기
시대1917년
관리서울특별시
주소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 동작구 본동

역사편집

일제강점기편집

1900년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가 건설될 때, 철교의 한쪽 또는 양쪽에 보도를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철도 부설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 제국이 공사비를 이유로 보도를 가설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민간용의 차량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도보로 한강을 건너는 이들은 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넜기 때문에, 보도 교량을 건설할 만한 수요가 되지 못하였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량진에서 찍은 한강인도교의 모습.

하지만 자동차가 수입되기 시작하고 강을 건너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선총독부는 도로공사의 일환으로 인도교 계획을 수립한다. 공사는 한강철교, 수풍댐 등을 건설한 하자마구미(일본어:間組)가 1916년 3월에 기공하여 1917년 7월 9일에 완공하고, 10월 7일에 다리를 개통한다. 이 때 신초리에 다리의 기초를 설치하며 나까노시마中之島라 하는데 현재 노들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노량진과 나까노시마를 잇는 경간 60m 7연의 440m짜리 한강교와, 나까노시마로부터 백사장을 건너 용산을 잇는 경간 60m 3연의 188m짜리 한강소교로 이루어져 이 둘을 아울러 한강인도교라 하였다.[1] 이로써 한강을 건너는 도보와 차량 통행이 가능해졌다.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 당시 조선 총독 및 내빈, 일반 시민들이 다리를 처음 건너는 도교식(渡橋式)을 가졌으며, 이완용이 내빈 대표로 연설했다. 한강소교와 한강교에는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이 쓴 현판이 걸렸다. 당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창간되기 전이라 매일신보가 주로 보도했는데, 다리의 당시 모습과 개통식 행사장의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2] 또 이 때 한강교에 전등을 설치하고 도로 양편에 아까시나무를 심어 경관을 조성하였다.

 
을축년 대홍수로 무너져 증축한 한강인도교의 모습. 각이 진 모양의 트러스가 부드러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1925년에는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양 다리를 잇던 나까노시마 부근의 제방이 무너지며 통행이 막힌다. "한강다리가 떠내려갔다"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3] 이렇게 무너진 한강인도교의 사이는 일단 철골구조로 임시복원한 다음 1935년부터 폭을 넓혀 새로이 공사하기 시작했다. 이 때 기존의 부재는 양수교를 건축할 때 재활용하였다. 경성전차의 한강교~노량진 구간을 부설한 것도 이때이며, 중지도 공원을 조설하고 중지도에 전차가 정지하도록 하였다.

해방 이후편집

 
한강대교 준공식 1958년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경에 한강 방어선 구축과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폭파한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이 발생한다. 이로써 강북의 인구가 강남으로 대피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폭파된 한강대교는 1957년 11월 30일 미군과 육군 133대대가 배다리를 가설하여 1개차선만 임시 복구되었다가,[4][5] 1958년 5월 15일 오전 11시에 복구가 완료되어 개통식이 열렸다.[6][7]

1962년에는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가 건설되면서 한강인도교는 제1한강교로 불리게 된다. 또 1968년에는 한강소교 밑의 백사장이 제거됨에 따라 한강물길이 뚫리고, 노들섬은 완전한 하중도가 된다. 1979년 1월에는 신교를 지어 4차선을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되어 1981년 12월에 완공되었고, 1982년 2월 27일에 완공되어 쌍둥이다리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제2한강교 건설 이후 한강에 세워진 다리들을 모두 한강대교라 부르다가 70년대부터 한강대교는 한강인도교를 부르는 호칭으로 자리잡는다. 이에 따라 1984년에는 한강종합개발사업에서 제1한강교는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2017년 10월에는 완공 100주년을 맞이했다.[8] 2020년 9월 10일에는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제1호로 등록되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도가 국가등록문화재와 시·도등록문화재로 나뉜 뒤 처음으로 등록된 시·도등록문화재이다.[9]

연혁편집

  • 1912년: 교량가설계획 수립
  • 1916년 3월: 착공
  • 1917년 10월: 준공
  • 1925년 7월: 홍수로 인해 소교 (용산 측) 유실
  • 1929년 9월 18일: 소교 재개통, 폭 18m로 확장
  • 1935년 10월: 대교 (노량진 측) 재건축 후 개통, 전차궤도 부설
  • 1950년 6월 28일: 한국 전쟁으로 인해 폭파
  • 1950년 10월: 임시 복구됨, 1차선 운행
  • 1958년 5월 15일: 한강 인도교 완전 복구
  • 1982년 2월 27일: 한강대교 신교 부설, 개통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
  • 1996년 7월 1일: 국도 노선 변경으로 인해 국도 제1호선 지정 해제[10]
  • 2020년 9월 10일: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제1호로 등록됨[11]

대중 문화편집

1999년 1월에 발표된 토이의 노래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뮤직비디오가 촬영되었다.

각주편집

  1. “第1期 治道工事 및 漢江橋 落成式”.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17년 10월 7일. 2021년 1월 17일에 확인함. 
  2. “한강보교는 금월준공, 규모와 설비가 경기남편의 장관”. 매일신보. 1917년 8월 14일. 
  3. “쇠다리걸린지 61년... 몇개나 더 놓이게될까 漢江다리”. 조선일보. 1978년 11월 1일. 
  4. “이권(利權)다툼으로 인도교보수(人道橋補修)가 지연(遲延) 자재확보(資材確保)한지 벌써 반년(半年)”. 조선일보. 1957년 2월 16일. 2020년 10월 11일에 확인함. 
  5. “대한뉴스 제 164호-한강 인도교 복구 준공 - YouTube”. 2021년 1월 17일에 확인함. 
  6. “제모습갖춘한강인도교(漢江人道橋)”. 조선일보. 1958년 5월 16일. 2020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 “대한뉴스 제 164호-한강 인도교 복구 준공 - YouTube”. 2021년 1월 17일에 확인함. 
  8. 영욕의 100년 한강대교...기능개선 손 놓은 서울시 주간조선 2476호 2017-10-03
  9. 고영득 (2020년 9월 10일). “한강대교, 서울시 등록문화재 1호로”. 경향신문. 2020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0. 대통령령 제15101호 일반국도노선지정령, 1996년 7월 1일 일부개정.
  11. 서울특별시고시 제2020-375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20년 9월 10일.

외부 링크편집

개통 당시의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