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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셔널리즘 또는 한국 국민주의(韓國國民主義)는 대한민국 내의 내셔널리즘 사상을 일컫는 말로, 좁게는 한민족인종주의에서 넓게는 내셔널리즘적 성향의 여러 정치적 이념들을 가리킨다.

목차

역사편집

역사적으로,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주된 목적은 발전과 외국의 영향에서 한국의 고대 문화와 국가 정체성을 보호하고, 일제 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문화적 자립을 위해서 한국의 문화적 독립성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 문화의 멋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민족주의 운동은 한국의 전통 문화의 복원과 보존을 요구했다. 1870년에 시작된 동학 농민 운동은 외국의 침략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의 뿌리이다. 이후 의병 운동이나, 문화적, 사회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광복 이후에는 통일 운동으로 이어졌으나 곧 실패하고, 분단 이후에는 양측의 독재 정권에 의해 남한 한정 민족주의, 북한 한정 민족주의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 운동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좌익 민족주의편집

독립 운동편집

19세기 후반,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종의 저항 운동의 한 형태였으며, 북쪽과 남쪽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19세기 후반에 외세가 침입해오자 한국인들은 외국인에 대해 저항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야 했다.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의 뿌리는 외부 영향에 대한 저항이였다. 식민지 기간 동안 한국의 민족주의는 한국, 중국, 특히 만주와 중국 본토, 극동 러시아 영토에서 일제에 대항하며 독립을 위한 투쟁을 시도했고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합병된 이후에는 임시 정부를 세우거나 비밀 결사 단체를 만들어서 무력적, 비폭력적, 문화적,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을 실시했다.

한국의 분단편집

광복 이후, 1945년에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38선에서 분단하였고, 통일 국가를 재건하는데 실패하여 분단은 상반된 정치 체제와 이념, 적대 관계, 세계 정치의 영향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 정치 제도, 시스템, 문화 부분에서 이질성이 심해졌다.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이끈 한국의 민족주의는 주로, 상대 체제에 반대하며 자신의 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한 민족운동이었고, 혁신계가 이끈 민족 운동은 남북 통일에 중점을 두었다.

한국의 민족적 국민주의편집

반일 감정편집

독도 분쟁편집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도에 대한 주권을 이양하라는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1954년부터 남한은 독도를 관할했으며, 민족 감정을 내포하는 양국의 논쟁은 오랜 역사적 악감정은 현재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1994년 UN 국제 해양법 조약의 도입으로, 한국과 일본은 배타적 경제 수역(EEZ) 경계가 400해리(700 km) 이하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동해상에 겹친 영토에 대해 새로운 해상 경계선을 설정하기 시작했다.[1] 1996년 양국 정부가 독도를 둘러싼 200해리(400 km) EEZ를 선언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은 심화되었으며 한일 관계가 역대 최고로 악화되었다. 이는 두 나라의 감정뿐만 아니라 양국의 민족주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었으나 제도화된 한국의 집단 기억은, 기성세대보다는 아니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을 반일주의자로 만들고 있다.[2] 한국인들에게 역사적 기억과 한의 감정은 깊게 자리잡았으며, 현실정치나 지정학, 경제적 문제를 바탕으로하는 정책 결정 모형으로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웃 국가, 동맹, 적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3]

한국의 식민지 과거 때문에 섬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와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되었다. 영토의 가치와 중요성은 물리적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주권과 정체성의 근원으로써 정신적 가치이다.[4] 부정과 굴욕의 강한 감정에 의해 한국의 민족주의 감상이 이 논쟁에 관여하게 되었다. 독도 그 자체는 한국의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이 되었으며, 더욱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5]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소재의 중요성을 넘어 감정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본에게 섬을 줘버리는 것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을 넘겨주는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논쟁에 민족주의를 부채질하는 역할을 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한일 관계에 대한 담화에서 "독도는 우리의 영토이다. 한국인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 회복의 상징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6] 독도 문제는 일본에게 한 번 점령당한 적이 있는 국가의 보호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노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 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입니다."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6]

독도 논쟁은 양국의 상호 인식에 영향을 끼쳤다. 갤럽 코리아와 갤럽 재팬 연구 센터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20%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감에 대한 이유를 물었을 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언급했으며, 일본인들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꼽았다. 이는 조선일보와 마이니치 신문이 실시한 2002년 설문조사(2002 피파 월드컵 이후)에서 35%의 한국인과 69%의 일본인이 서로의 국가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것과 대조된다.[7]


각주편집

  1. Min Gyo Koo. Following the introduction of the UN Law of the Sea in 1994, South Korea and Japan both began proceeding to set their new maritime boundaries, particularly in overlapping terrain in the East Sea/Sea of Japan, where the distance between some EEZ baselines was less than 400nm.
  2. Berger (2005 paper)
  3. Larsen, Kirk (2006 talk)
  4. Wang (2003), page 391.
  5. Min Gyo Koo. In addition, the symbolic attachment of territory to national identity and pride has made the island dispute all the more intractable and difficult to resolve.
  6. Speech by Roh Moo-hyun (April 2006)
  7. “Friendliness Between Japan and Korea Withering.”. 《Chosun Ilbo.》. 2007년 5월 17일. 2008년 3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