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겸

한준겸(韓浚謙, 1557년 ~ 1627년 음력 7월 17일)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인조의 왕비인 인열왕후의 아버지이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며 당파는 서인(西人)에 속했다.

한준겸
韓浚謙
조선 인조의 국구
서평부원군 西平附院君
이름
별호  : 익지(益之) ·  : 유천(柳川)
시호 문익(文翼)
신상정보
출생일 1557년
사망일 1627년 7월 17일 (음력)
가문 청주 한씨
부친 한효윤
모친 신금희
배우자 회산부부인 창원 황씨
자녀 2남 6녀

생애편집

선조1586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주서, 봉교, 전적을 지냈다. 금천 현감으로 있을 때 정여립의 난이 일어나자, 정여립의 사위 이진길을 천거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었다. 호당(湖堂)에 선발되고 1592년 예조정랑이 되었다가 임진왜란 중에 강원도사, 사서, 원주목사, 지평, 필선, 필선, 정언, 교리, 검상, 사인, 부응교, 사간, 집의 등을 거쳐 1597년 정유재란 때 좌부승지에 이르렀는데, 명나라 제독 마귀를 도와 말먹이와 식량 등을 보급하였다.

그 후 경기감사, 대사성, 경상감사, 병조참판, 전라감사, 부제학을 거쳐, 1605년 호조판서가 되었다. 선조가 죽을 때 한준겸을 비롯하여 일곱 신하들에게 영창대군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하였는데, 광해군 때 영창대군이 반역죄로 몰려 죽게 되자 한준겸도 1617년 충주에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 벼슬에 올라 1621년 5도 도원수가 되어 국경 지방을 수비하는 데 힘썼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사위인 인조가 즉위하자 영돈녕부사가 되었으며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에 봉해졌다.

황성의 딸 회산부부인 황씨와의 사이에서 인열왕후를 포함한 2남 4녀를, 첩실에게서 2녀를 두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둘째 딸인 여이징의 처 한씨, 셋째 딸인 정백창의 처 한씨와, 서녀인 여섯째 딸 진원군 이세완의 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 관계편집

각주편집

  1. 세종의 아들인 왕자 계양군의 현손
  2. 병자호란때 순절하였다
  3. 성종의 5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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