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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 언신(彦信)이 속함대군(速咸大君)에 봉해졌으므로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고, 속함(速咸)이 함양(咸陽)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貫鄕)을 함양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시대 예부 상서를 역임한 박선(朴善)을 중시조(中始祖)로 한다. 박선의 현손(玄孫) 신유가 고려 고종(高宗) 때 김경손(金慶孫)과 더불어 나주(羅州)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고, 슬하에 아들 6형제를 두어 검교군기소감(檢交軍器少監) 지문(之文)을 파조(派祖)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와 문원공파(文元公派: 지빈), 함양군파(咸陽君派: 지량),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지수), 어사공파(御史公派:지온),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지영) 등으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함양 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8명을 배출하였다.

본관편집

함양(咸陽)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속함군(速含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천령군(天嶺郡)으로 고치고 고려 현종(顯宗)때 함양군(咸陽郡)이 되어 합주(陜州)에 속하였다가 함(含)을 함(咸)으로 고쳐서 함양(咸陽)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함양현(咸陽縣)으로 강등되었으며 조선 태조 때 군(郡)이 되었고, 1914년 안의군(安義郡)의 7개면을 병합하고 1957년에는 석복면(席卜面)을 함양면에 이속시켜 함양읍으로 승격시켰다.

분파편집

  • 소감공파(少監公派) 검교군기소감(檢交軍器少監) 지문(之文)을 파조(派祖)
  • 문원공파(文元公派) - 박지빈
  • 함양군파(咸陽君派) - 박지량
  •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 박지수
  • 어사공파(御史公派) - 박지온
  •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 박지영

인물편집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항렬표편집

  • 오한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