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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許京寧, Huh Kyung Young, 양력 1950년 1월 1일[2]~ )은 대한민국정당인이자 전 본좌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이며 2019년 8월 15일 국가혁명당 창당대회에서 당대표 및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허경영
許京寧
Huh Kyu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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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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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0년 1월 1일(1950-01-01) (6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주지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1]
본관 김해(金海)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학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직업 가수 (본좌엔터테인먼트 소속)
기업가 (본좌엔터테인먼트 회장)
정당인 (前 경제공화당 총재)
부모 허남권(부), 조계식(모)
종교 무종교
의원 선수
정당 무소속
웹사이트

공식 사이트
공식 페이스북
공식 팬카페
본좌랜드

유튜브 허경영강연
유튜브 허경영TV
유튜브 허경영뉴스
유튜브 허경영강연짤
서명 허경영서명.jpg

1996년 1월 1일 허경영 혁명공약 33[3][4][5]가지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혁명 공약 33가지는 일부 정신 나간 정치인들이 따라하고 싶은 공약으로 바뀌었다.[6][7][8]

그 대표적인 예로 지금 노인들이 노인수당 20만원씩을 받고 있는 것은 실제로 허경영의 노후혁명 공약이 현실화된 것이다.[9]

그러나 그 누구도 완전히 모방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공약으로 이미 2016년 9월 30일 저작권(특허)에 등록되어 있다.[10]

2007년 대선까지는 주로 정치 행보를 보여 왔으나 17대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前 대표와의 결혼 루머설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기소돼 200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돼 2009년 만기 출소했다.

2009년부터 특별한 발성인 저음 랩이 특기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8월 14일 첫 번째 디지털 싱글 〈Call Me〉를 발표 하며 가수로 데뷔 하였다.[11]

2009년 9월 18일엔 2번째 디지털 싱글 '허본좌 허경영'을 'Right Now' 콘서트에서 선공개 하였으며, 이 곡은 같은 해 10월 15일 디지털 싱글로 발매 되었다.

최근의 행보로는 2017년 12월 12일엔 가수 최사랑[12]과 함께 신곡 ‘국민송’ 티저를 선 보였고 2017년 12월 19일 신곡 국민송을 발표 했다.[13]

2018년 2, 3, 4월에 허경영은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 소개로 미국 상원 아태위원장 코리가드너, 마코 루비오 등을 만났고 같은해 2018년 5월 5일 낮 12시경에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모처에서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과 함께 허경영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한 바 있다[14] 고 밝혔으나 2019년 05월 17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Y’는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며 지지자들에게 공개한 사진이 ‘조작’됐다고 보도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 됐지만 2018년 12월 24일부로 복권됐다.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19년 8월 15일 창당대회 후 2020년 국회의원 30명을 내세워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고 밝혔다.[3]

목차

생애편집

출생과 성장편집

이하의 내용은 본인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를 따른 것이나, 그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 아버지인 허남권(許南權, 1918년 ~ 1950년 6월 22일)은 훗날 GS 그룹의 일가가 되는 허정구의 조카로 원래는 만석꾼에 대지주였고 29세 시절이던 1946년, 21세의 조계식(趙桂植) 여사와 결합하였다. 하지만 본인 소유의 일만여 마지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것을 빌미로 다른 지주들에게 사상범으로 고발되어, 1950년 6월 2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 1950년 초 겨울, 어머니 조계식(趙桂植, 1926년 ~ 1951년)은 중랑천 중량교 밑 움막에 살고 있었다. 허경영은 1950년 1월 1일 움막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죽기 직전 허경영을 경남 진주 지수마을에 데려다 놓는다.(이후 허경영은 지수초등학교 38기 졸업생이 된다.)
    • 그러나 검찰에서 조사한 결과, 1947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허경영은 박철쇼에 출연해 1947년 7월 13일은 시골에서 붓으로 쓰다보니 생긴 실수(그시대엔 흔한 일이라고 한다)이며 자신은 중랑천 밑 움막에서 1950년 1월 1일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 고향 진주 지수 마을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의 젖을 얻어먹고 자라던 허경영이 세 살이 되던 때 어머니는 산후병으로 사망하였다.
  • 아버지로부터 토지를 나누어받은 농부의 양아들이 되었다. 7살 때 그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청한 늙은 탁발승의 말에 따라, 국민학교 시절 새벽 4시부터 6년간 서당을 다녀 주역 등 30여 권의 한문서적과 사서삼경 등 유교서적을 모두 배웠다.[15] 졸업 이후에는 머슴살이를 하느라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 15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상경 직후에는 남대문시장 지하도 입구에서 구두를 닦으며 무허가 합숙소에서 협성고등공민학교라는 야간중학교를 다녔다.
  • 이후 화계사로 찾아가 주지인 숭산 이행원 주지스님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곳에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려의 기숙사가 있어, 낮에는 승려들의 밥을 짓고, 야간에는 광화문에 있는 협성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허경영은 그 절에서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중도사상을 3년간 배웠다.
  • 공민학교를 졸업한 허경영은 고등학교 과정인 협성상업전수학교에 들어갔다. 절의 일이 많아 고등학교 공부가 어렵게 되자, 어떤 승려의 안내로 광화문에 있는 학교에서 가까운 세검정의 작은 암자를 소개받아서 그곳으로 떠난다.
  • 1966년, 허경영은 내수동 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었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는 2년간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의 구약, 신약, 모세의 오경을 배우며 주일반을 맡아 가르쳤다.
  • 교회 재정이 어려워서, 허경영은 교인이 경영하는 ‘동양당’이라는 금반지 수출 공장에 2년간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신주와 금을 끓일 때 청산가루를 넣는 일을 하다 보니 코피를 자주 흘렸다.
  • 고3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청량리 위생병원(현재 삼육서울병원)에서 한 번에 3,000원씩 받으며 매혈을 했다.
  • 19세가 되어, 홍제동안산 꼭대기의 판자촌 위쪽에 군용텐트를 쳐놓고, 그곳을 집 삼아 광화문의 야간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다녔다.
  • 고등학교시절 KBS 퀴즈열차에 출현하여 1등을 하였다. 그때 입은 옷이 너무 허름해 이광재 아나운서가 지어준 별명이 "짜집기"였다.[4]
  • 눈보라가 치는 날 텐트가 사라져서, 밤중에 텐트를 찾다가 바위 아래에 있는 판자집의 화장실로 미끄러 떨어졌다. 오른쪽 다리가 부려져 한 달 동안 달동네에서 살았다.
  • 1968년, 허경영이 달동네에서 받아온 실내용 슬리퍼 10켤레를, 중구 장충동에 있는 삼성 이병철 당시 회장의 집에서 모두 구매하였다. 이병철 회장의 부탁으로 허경영은 그의 양아들이 되었다.
  • 이병철 회장은 비선(비공식적 라인)으로 허경영을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 정책보좌역으로 소개시켜주고, 20살 허경영은 1969년부터 1979년 박 대통령 서거 전까지 10년간 비밀보좌를 했다.
    • LG그룹GS 그룹의 창설 과정에도 자신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그것이 알고싶다는 관련 증인들을 통해 증거자료를 확보했으나 보도에서 누락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16] 그러나 허경영 본인의 권유로 소송은 번복되었다.[17]) 삼성, GS 측에서는 이러한 허경영의 주장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승려나 목사의 경우 현재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알 길이 없다.

학력편집

정치 활동편집

1997년 대선 이전편집

 
2002년 대선 출정식
  • 박정희 대통령 비밀 보좌관 시절 새마을 운동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5]
  • 1972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한 후, "대한불우자 보호협회"를 만들어 운영하였다[18]
  • 1987년 김대중, 김영삼이 총재를 지낸 신민당과 같은 이름의 신민당(이름만 같을뿐 다른 당임)의 부총재를 역임하고,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으나 출마하지 않았다.[18]
  • 1991년 서울특별시 은평구의원 선거와 서울특별시의원 선거에 각각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시의원 출마 당시의 당적은 민중당이었다.)
  • 1992년 10월 24일 진리평화당을 창당하였다.[19] 14대 대선 후보로 진리평화당은 당초 허경영을 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다가 마지막 순간 현홍균 당고문을 후보로 선출하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992년 11월 25일 마감 3분전인 오후 4시 57분에 서류 제출을 시도하였으나, 시간내에 기탁금 3억원이 준비되지 않아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하였다.[20]
  •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후보 등록을 하였고, 9억 9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하였다.[21][22]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다.[23]
  • 2002년 11월 제16대 대선 후보 민주공화당 대선후보로 등록하고자 하였으나 기탁금 문제로 등록을 포기하였다.[24]
  • 2004년 대한민국 1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비례대표 1번은 허경영 대표였다.[25]

199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1987년 대선 당시 신민당의 부총재로 취임하여 대통령 후보로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진리평화당(1992년), 공화당(1997년), 경제공화당 후보(2007년)로 계속 출마하였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는 IQ 430의 천재정치, '제2의 박정희' 슬로건, 산삼뉴딜, 국회의원 자격고시, 출산수당 3천만원, 몽골과의 국가 연합론 등을 주장하는 등 독특한 공약들로 관심을 끌었다.[26]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편집

그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2006년 2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06년 7월 열린우리당에 기간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딴지일보를 포상하고 청와대에 탱크를 진격시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27]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허 본좌'라는 별칭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후 KBS 폭소클럽2, 연예가중계,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자신에 대한 비판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매스컴에 등장해 황당한 언행을 이어가면서 풍부한 화제거리를 뿌렸다.

주요 공약편집

허경영 혁명공약 33가지중...[28][29][30]

  • 정치혁명[31]: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무보수 명예직으로 후원금만으로 운영
  • 결혼혁명[32]: 결혼수당 1억원 지원 (남녀 각 5,000만원씩), 주택자금 2억원 평생 무이자 지원. (국가가 결혼을 위해 적극 밀어주는 혁명으로 평생 무이자니..안갚아도 되는 형식. 그러나 이혼시 주택자금 2억원은 반환해야하니 잘 생각해 볼일이다)[33]
  • 출산혁명[34]: 출산시마다 5,000만원 출산수당지급, 전업주부수당 100만원 지급 (단, 직장인은 제외)[35][36]
  • 노후혁명[37]: 65세이상 노인에게 월 70만원씩 지급. 부부 140만원 지급, 노후불안 해결.(국민배당금과 무관하게 별도 지급, 예: 부부2인: 국민배당금300+노후수당140=합 440만원지급)
  • 부채혁명[38]: 1,300조 가계부채 무이자융자로 전액 전환, 년간 40조원에 달하는 이자를 변제 서민경제 회복(양적완화 실시하여 그간 불리하게 매겨진 빚들을 청산해 새로운 국가 건설)
  • 배당혁명[39]: 국가의 1년예산 400조원을 50%를 절약하여 국민전체(20세이상의 기혼자, 만30세이상의 미혼자)의 통장으로 월 150만원씩 나누어주는 국민배당금 제도 실시
  • 교육혁명[40]: 중고교때 시험은 본인이 잘하는 한과목만 시험보게하고 수능시험 폐지, 나머지 과목은 수업만 받게함.(언제나 원하는 진로로 바꿀수 있다)
  • 유엔혁명[41]: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전쟁불안 해소. 국방비 절감과 세계통일 주도.
  • 징병혁명[42]: 징병제를 즉시 폐지하고 모병제 실시, 매월 200만원 월급-직업군인으로 대체.
  • 도덕혁명[43]: 대통령이 전국민의 관혼상제를 챙김, 생일날 금일봉10만원과 케잌,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선물 배달, 가족사망시 금일봉 1000만원과 대통령의 조화배달.[44]

득표편집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로 7위를 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이다. 이러한 높은 득표율은 웹상의 인기와 아울러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45]

특히 아래의 지역에서는 이인제 후보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 서울특별시 :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광진구, 마포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중랑구
  • 경기도 : 구리시, 과천시, 성남시 분당구, 용인시 수지구, 수원시 영통구, 안양시 동안구, 고양시 일산동구
  • 부산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금정구, 동래구, 부산진구, 사상구, 사하구, 수영구, 연제구, 영도구, 해운대구, 기장군 (강서구를 제외한 모든 구)
  • 대구광역시 :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달서구, 수성구, 달성군
  • 울산광역시 : 중구, 동구, 남구, 북구
  • 강원도 : 강릉시(허경영 1.01%로 전국 최다 득표율), 속초시
  • 경상북도 :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봉화군, 상주시, 안동시, 울릉군, 울진군, 청도군, 청송군, 포항시 북구, 포항시 남구
  • 경상남도 : 거제시, 거창군, 김해시, 사천시, 산청군, 양산시, 진주시, 진해시, 창원시, 함안군

부산, 대구, 울산의 경우,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허경영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제쳤으며, 부산 동래구, 대구 남구, 대구 수성구의 경우 2배가 넘는 득표를 하였다.[46]

대선 이후편집

대선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허경영은 이후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여러 가지 기행을 선보이며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대선 이후에는 경제공화당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계속 홍보했으며, 18대, 19대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허경영은 2022년 5월 실시될 예정인 20대 대선를 목표로 33개의 공약을 발표했다. 2018년 12월 24일부로 복권 되면서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허경영 관련 PD수첩 방송내용을 비판하는 1인시위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편집

그는 예전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자신과 박근혜 한나라당(현재의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이며 결혼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 했었다. 17대 대선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허씨는 지난 200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허씨는 2007년 9월 대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로 했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취임 만찬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허씨는 대통령 후보 공보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을 싣고 “부시 대통령의 당선 축하파티에 초청된 허경영. 이때 허경영은 유엔본부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한국 안보가 해결된다고 하여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있는 듯한 사진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그의 주장은 거짓이었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은 합성으로 밝혀졌다. 당시 재판부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심어준 데다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47] 그는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하였다.[48]

출소 이후의 행보편집

출소한 이후 허경영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언급한) 마이클 잭슨 뿐만 아니라 저명인사들은 꼭 죽기 3일 전에 영혼의 형태로 나를 찾는다.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인기에 비하면 TV에서 극심한 괄시를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방송국 하나를 인수하거나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인터넷은 장악을 했으니 방송국 인수나 설립을 통해 '본좌 허경영쇼'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서히 방송을 장악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비현실적인 주장을 이어갔다.[49]

그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이클 잭슨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 왔다거나, 수영선수 박태환의 세계 선수권 대회 부진이 본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발언하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을 계속하였다. [50]

한편 허경영은 2009년 8월 14일, 디지털 싱글 〈Call Me〉를 공개하였다. 발매 하루 만에 싸이월드 BGM(배경음악) 차트 1위에 등극하며 화제를 모은 이 곡의 작곡에는 록밴드 뷰렛의 기타리스트 이교원이 참여하였으며, 허경영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51] 2009년 9월 18일 홍익대학교 브이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52]

SBS와의 진실 공방편집

2009년 10월 17일, 11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신드롬 뒤에 숨겨진 진실, 허경영은 누구인가?'라는 프로그램을 총 2회에 걸쳐 방송하였다.

허경영은 사진과 함께[53] 자신이 부시 미 대통령의 당선 축하 만찬에 초청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그 해당 만찬은 "돈만 주면 누구든지 갈 수 있는 만찬"(뉴욕 한인권익신장위원회 회장)이었다고 부풀려 방송하였고 "부시와 함께 찍은 사진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등은 모두 합성"(유경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허경영이 조지 W. 부시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54]

또한 허경영은 끊임없이 이의가 제기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반론으로 자신의 저서(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새나라)를 증거로 제시하였으나 취재 결과 그의 책에 담긴 추천사에 대해 "서울대 문학박사가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 글을 쓸리가 없다. 대필의 모습이 보인다"(한양대 국문과 교수)라고 소감을 밝혔으며, 서울대 문학박사의 지인에 따르면 "그리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끝내 (허경영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하였다"라고 응답해주었다. 여기에 허경영 측은 "추천서에 기재돼 있는 사인이 본인이 작성한 게 맞느냐 아니냐에 주안점을 두어 허총재의 박 대통령 보좌관 경력을 마치 허위인 것처럼 유도한 방송한 것"이라 못박았다. 하지만 2007년 9월 13일 박정희 대통령 대통령실 수석 보좌관,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장국진 박사(2008년 작고)가 허경영이 쓴 책 "무궁화꽃은 지지않았다" 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장국진 박사 자신이 산증인이라고 주장했다.[6]

2009년 10월 22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의 인터뷰에서 허경영은 자신의 과거 인쇄업과 결혼 사실에 대해 "IMF로 사업이 위기에 처한 친구를 위해 잠시 인쇄업을 맡았다."고 밝혔고 이어 "고아원을 운영하는 도중 고아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몇차례 호적상으로 결혼을 한 것으로 유전자 조사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라고 하였다.[17]

취재진이 허경영과 채무[55] 관계에 얽힌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던 도중에 채권자에게 일부를 변제해주면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는 공증을 받았고 공증도 함께 방송되었다.

한편 허경영 측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이에 대해 고소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56][57] 실제로 고소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2019년 05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Y’는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며 지지자들에게 공개한 사진이 ‘조작’됐다고 보도했다.[58]

2019년 06월 18일 허경영 측은 SBS 방송이 ‘허위보도’라며 실제 사진과 같이 사진촬영을 했던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의 공증서류를 들고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제소했다.

2019년 07월 09일 언론중재위원회 결과는 ‘조정 불성립’. 허 전 총재는 “너무하다”며 소송전을 예고했다.

 
SBS가 조작된 사진이라고 보도한, 허경영 총재와 트럼프 미국대통령 그리고 임청근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사진

2019년 07월 09일 한미동맹협의회 총재 임청근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8년 2, 3, 4월에 허경영 총재는 한미동맹협의회 임청근 총재의 소개로 미국 상원 아태위원장 코리가드너, 마코 루비오 등을 만났고

 
허경영 총재님과 코리 가드너 미 상원의원, 임청근 총재

같은 해 2018년 5월 5일 낮 12시경에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모처에서 임청근 총재와 함께 허경영 총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한 바 있으며, 허경영 총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와 같이 사진을 찍은 것과 미국 핵심 상원의원들을 만난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59]

 
동아일보 전면 광고. 허경영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핵심 상원의원들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진이다.

주장, 예언 및 어록편집

허경영은 수차례 돌발적인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IQ가 430에 이르고 눈빛만으로도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60], 축지법과 공중부양 등을 구사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저서를 통해 자신이 박정희의 비밀 보좌관이라고 주장한 것은 물론, 모든 창녀들을 만났다고도 말하였다.

과거 마이클 잭슨, 김대중 등 유명 인사들이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의 꿈에 나타났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61][62]

허경영의 예언력은 지구 끝판대장급이다.

1.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시위’를 4년 전에 예언함(2012년).[7]

2. 트럼프 당선을 1년 2개월 전에 예언함(당시 공화당 꼴찌).[8]

3.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일주일안에 쓰러진다 [9]

삼성은 이재용을 회장으로 하고 회사마크를 청색에서 빨간색으로 빨리 바꾸지 않으면 삼성이 해체된다)

4. 대우그룹 회사마크 변경 예언.[10]

5. 쌍용그룹 회사마크 변경 예언.[11]

6. 25년전부터 해온 인구감소, 저출산, 고령화 예언과 공약들.[12]

허경영 신드롬편집

  • 경향게임스 2009년 9월 16일자 51면 기자 방담 코너의 '게임 업계에 부는 허경영 신드롬'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허본좌’ 신드롬을 일으켰던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가 게임 업계에도 그 열풍을 몰고 왔다고 하는데요. 이른바 ‘허경영’ 이름 석자를 세 번 외치면 모든일이 이뤄진다는 설입니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와우’에서는 한 유저가 주사위를 굴릴 때 ‘허경영’을 세 번 외쳤더니 90% 이상 성공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타 게이머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63] 이는 게임업체에서도 예외가 아닌데요. 업계 관계자들이 잘못한 일을 보고 하거나 내기를 걸 때 ‘허경영’ 주문을 외치면 바로 소원이 이뤄진다고요. 단, 전제조건은 진심으로 ‘허경영’을 외쳐야 한다고 하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음반 목록편집

허경영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회사인 본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으며, 사실상 허경영 1인 기획사이다. 허경영의 수석 보좌관인 박병기가 대표로 있다.

디지털 싱글편집

  1. Call Me (2009년 8월 14일)
  2. 허본좌 허경영 (2009년 10월 15일)
  3. 허경영의 크리스마스 캐롤 (2009년 11월 30일)
  4. Red Angels (2010년 6월 11일)
  5. Right now (2010년 12월 8일)

베스트 앨범편집

  1. BEST T7 (2010년 12월 22일)

기타 활동편집

  • 강의석이 제작한 영화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64]
  • 응답하라 1994 케이블 채널 tvN이 제작한 드라마에 허경영이 까메오로 출연해 공중부양을 선보였다.[65]

광고 모델편집

  • 변락에프과립 홍보대사[66]
  • 불패온라인 홍보모델[67][68]

저서편집

  •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ISBN 978-89-952568-0-0)
  • 2000년대의 한국대통령은?
  • 《LOTTO 복권신문》(허경영이 17대 대선 당시 발행해 유포한 것으로 재판부에서 판결되었다. 또한 이 신문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공정성 및 형평성 위반으로 경고문 게재 징계를 받았다.)[69][70]
  • 이 외에 《유녀》, 《그가 오고 있다》, 《동방의 등불》,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등의 저서와 《한국 노사 협의의 미래》, 《분배가치와 사회복지》, 《불우자보호의 세계적 전망》등의 논문을 저술했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함께 보기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3·26 지방 선거 서울특별시 은평구의원(갈현제1동 선거구) 1대 무소속     21.1% 1,565표 3위 낙선[71]
6·20 지방 선거 서울특별시의원(은평구 제1선거구) 1대 민중당     8.5% 2,451표 4위 낙선[72]
제15대 대선 대통령 15대 공화당 0.15% 39,055표 7위 낙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민주공화당) 17대 민주공화당 0.11% 24,360표 비례대표 1번 낙선
제17대 대선 대통령 17대 경제공화당 0.4% 96,756표 7위 낙선

각주편집

  1. 이상휼 (2017년 5월 2일). “허경영 "이번에 대선 출마했으면 무조건 당선". 뉴스1. 2017년 5월 14일에 확인함. 
  2. 본인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서 주장하고 있는 생년월일
  3. 허경영의 혁명공약 33
  4. 허경영 혁명공약 33 강의중~
  5. 허경영 33 혁명공약
  6. 허경영의 선견지명 누가 '황당 공약'이라고 그래~ _채널A_뉴스TOP10
  7. 허경영공약33가지 대대적방송보도! 정치인들 반성하라!
  8. 남경필 '광역서울도’발언, 허경영 '지역감정 해소법' 재조명
  9. 허경영 혁명공약33: (5) 노후혁명
  10. sbs 허경영 공약과 저작권관련 뉴스보도
  11. 남형석 (2009년 8월 14일). “허경영 ‘콜미’ 음원차트 1위 "정규앨범 낼것". 스타뉴스. 2009년 8월 14일에 확인함. 
  12. 최사랑 부자되세요
  13. 국민송, 허경영작사 노래: 허경영, 최사랑
  14. 조, 택영기자 (2019.07.12). “[단독] 허경영-트럼프 만남 ‘키맨’ 임청근 박사 “‘허경영’ 내가 데려갔다””. 《일요서울-뉴스블리치》. 일요서울. 2019.07.12에 확인함. 
  15. 허, 경영 강연 허토피아 (2019.07.19). “승산스님과 어릴적 허경영 이야기”. 
  16. 배문희 (2009년 10월 22일). “허경영 "SBS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는 완전 엉터리". 문화저널21. 
  17. “허경영 "박근혜 의원 명예훼손 진심으로 사과". 평화방송. 2009년 10월 22일. 
  18. “대선출마 군소후보가 걸어온 길/허경영 후보”. 동아일보. 1997년 11월 28일. 2008년 1월 7일에 확인함. 
  19. “진리평화당 대선후보/허경영위원장 지명”. 세계일보. 1992년 10월 25일.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0. “후보등록 마감창구 “해프닝” 속출(돋보기)”. 경향신문. 1992년 11월 26일.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1. “후보등록 첫날 스케치”.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2007년 12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2. “등록후보들 재산신고”. 조선일보. 1997년 11월 27일. 2007년 12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3. “50년 만에 첫 여야 정권교체”. 문화일보. 1997년 12월 19일.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4. “후보등록 마감...모두 7명출마”. 세계일보. 2002년 11월 29일.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5. “[여의나루] 총선 후보 등록한 10개 정당”. 국민일보. 2004년 4월 1일.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6. '당선 매개 매관매직'까지, < PD수첩 >의 '허경영 검증'.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6일. 2008년 1월 30일에 확인함. 
  27. 송홍근 기자 (2007년 10월 4일). “이색후보 황당공약 눈에 띄네”. 주간동아. 
  28. [1]
  29. [2]
  30. 허경영 33 혁명공약 New 그래픽
  31. 허경영 혁명공약33: (1) 정치혁명
  32. 허경영 혁명공약33: (3) 결혼혁명
  33. 결혼혁명, 출산혁명
  34. 허경영 혁명공약33: (4) 출산혁명
  35. 출산혁명, 결혼혁명
  36. 허경영식 출산장려정책
  37. 허경영 혁명공약33: (5) 노후혁명
  38. 허경영 혁명공약33: (6) 부채혁명
  39. 허경영 혁명공약33: (7) 배당혁명
  40. 허경영 혁명공약33: (11) 교육혁명
  41. 허경영 혁명공약33: (16) 유엔혁명
  42. 허경영 혁명공약33: (19) 징병혁명
  43. 허경영 혁명공약33: (28) 도덕혁명
  44. 노후혁명, 도덕혁명
  45. 송한진 기자 (2007년 12월 20일). “<기자수첩>허경영 후보의 선전과 정치 허무주의”. 뉴시스.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46.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08년 1월 7일. 2008년 1월 6일에 확인함. 
  47. “언론중재위까지 간 허경영-트럼프의 ‘엄지 척’ 사진 논란”. 중앙일보. 2019.06.19. 
  48. 최영훈 (2009년 7월 22일). “‘허본좌’ 허경영 23일 출소 “토크쇼 구상 중””. 서울신문. 2017년 5월 14일에 확인함. 
  49. “허경영 "인터넷은 장악, 방송사 인수하겠다" 허경영이 진리다”. 머니투데이. 2009년 7월 30일. 2009년 7월 30일에 확인함. 
  50. “허경영이 말하는 박태환 선수의 부진 이유”. 조선일보. 2009년 7월 30일. 2009년 7월 30일에 확인함. 
  51. “허경영, `콜미`로 가수에 도전장”. 한국경제. 2009년 8월 12일. 2009년 8월 12일에 확인함. 
  52. “허경영, 18일 단독 콘서트 개최”. 2009년 9월 8일. 2009년 9월 8일에 확인함. 
  53. 허경영 (2000).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제6판. 서울: 한강사. 10-11쪽. 
  54. 허, 만섭기자 (2008.08.04). “‘본좌’ 허경영, 美 부시 대통령 취임 축하파티 실제로 참석했다”. 《신동아일보》. 동아일보. 
  55. 2009년 10월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허경영의 채무는 약 7억 원이다.
  56. 신기한 기자. “허경영 '그것이 알고싶다' 고소 "사실 왜곡 했다". 투데이코리아.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7. 정, 창곤 기자 (2009.11.11). '그것이 알고싶다' 조작 방송 의혹, 배후있나?”. 《시사프라임》. 시사프라임. 2009.11.11에 확인함. 
  58. '궁금한이야기Y' 허경영, 트럼프와 인증샷 감정결과…'합성'. 뉴스1. 2019.05.17. 
  59. 조, 택영기자 (2019.07.12). “[단독] 허경영-트럼프 만남 ‘키맨’ 임청근 박사 “‘허경영’ 내가 데려갔다””. 《일요서울》. 일요서울. 2019.07.12에 확인함. 
  60. 김춘경 (2008년 1월 8일). “뜨거운 눈빛 허경영, 특이한 삶과 사랑”. 문화저널21.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61. '출소' 허경영 "잭슨 사망 3일 전 영혼이 찾아와" 주장. 세계일보, 2009-07-29 입력, 2009-07-29 확인.
  62. 이재훈 (2009년 10월 14일). “허경영, 그것이 알고 싶다”. 뉴시스.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6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주사위 게임 결과
  64. 강의석 제작 영화에 허경영 출연한다
  65. 응답하라 1994 허경영 까메오 출연: 공중부양 2013년 8월 2일 케이블 채널 tvN 확인함
  66. 허경영 공중부양의 비밀, 변락에프과립에 있다?
  67. 라이브플렉​스, 불패온라인 모델 허경영 출연 홍보영상 공개
  68. [온라이프존] 불패온라인, 허경영 불패당 기조연설 - 유튜브
  69. '허본좌’ 사전 구속영장 청구,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
  70. “언론중재위원회 제17대 대선 선거기사심의위원회 5차 회의결과”. 2016년 5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2월 18일에 확인함. 
  71. 中央選擧管理委員會 (1991). 《區·市·郡議會議員選擧總覽》. 179쪽. 
  72. 中央選擧管理委員會 (1991). 《市·道議會議員選擧總覽》. 162쪽.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