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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침(許琛 ; 1444년 ~ 1505년)은 조선문신, 시인이다. 본관은 양천. 자는 헌지(獻之), 호는 이헌(頤軒)이다.

허침
許琛
출생1444년
조선
사망1505년 (62세)
조선
성별남성
국적조선
본관양천
별칭자(字) 헌지(獻之)
호(號) 이헌(頤軒)
학력1462년 진사시에 합격
1475년 친시문과에 을과 급제
직업문관, 시인
종교유교(성리학)
부모허손(부), 최씨 부인(모)
친척허종(형)
허비(할아버지)
최안선(외할아버지)
허기(증조할아버지)

생애편집

1475년(성종 6)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 교리를 거쳐 동부승지, 좌부승지, 이조참판, 예조참판, 대사헌, 우승지, 좌승지를 지내고 한 때 전라도관찰사로 선정을 베풀기도 했다. 연산군 때 형조참판, 병조참판을 하다가 무오사화 때 좌천되어 경상도관찰사로 있다가 병조참판, 호조참판, 형조참판, 이조참판으로 특진관을 겸하고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1]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신종호, 조위, 유호인 등과 함께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을 떨쳐 세자(연산군)의 신임을 받았다. 1489년에 《삼강행실》을 정리하였으며, 1504년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다. 성종 때 윤비 폐위를 반대했기 때문에 갑자사화 때에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는 연산군의 옳지 못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관련 드라마편집

참고 자료편집

  1. 1502년영의정한치형이 별세한 후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좌의정성준, 우의정이극균도 승진을 하고 이조판서강귀손, 호조판서노공필, 병조판서이극돈, 형조판서박안성, 공조판서박숭질도 대거 사직하거나 다른 자리로 이동을 했다. 영의정성준, 좌의정이극균, 우의정유순이 임명되고 이조판서허침, 호조판서이집, 병조판서강귀손, 형조판서김수동, 공조판서김응기 등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