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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백(許河伯, 일본식 이름: 金村河伯 가네무라 가와하쿠, 1909년 ~ ?)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교육인 겸 여성계 인물로 조각가 김복진의 부인이다. 호(號)는 협산(峽山).

허하백
許河伯
조선총독부 대화숙평의회 대표상무평의원
임기 1941년 12월 21일 ~ 1942년 4월 25일
군주 히로히토
섭정 도조 히데키
총독 미나미 지로
총리 도조 히데키
조선인민공화국 총리 여성행정교육특보비서관
임기 1945년 9월 6일 ~ 1945년 12월 27일
부주석 여운형
총리 허헌
부총리 최근우
신상정보
출생일 1909년
출생지 대한제국 함경북도 청진
사망일 ?
경력 조선공산당 교육행정특보위원
전국부녀총동맹 제2부총재
정당 무소속
배우자 김복진
친인척 김팔봉(시제)
김복희(시질녀)

생애편집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였고 함경북도 온성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소설가 박화성의 소개로 카프 창립자이며 사회주의 계열의 유명한 문예운동가인 김복진을 만나 결혼했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를 지내던 1940년 남편 김복진이 사망했는데, 이후로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여성계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가 되었다.

1942년조광》 주최의 시국 좌담회에서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며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고, 같은 해 〈총후부인의 각오〉라는 친일 논설을 《대동아》에 기고했다. 전시 체제를 맞아 친일 여성 인사를 총망라해 구성한 조선임전보국단 부녀대에도 참여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좌우 합작의 여성 단체인 건국부녀동맹을 결성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전국부녀총동맹 제2부총재를 맡으며 좌익 계열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 되었다. 이후 1946년 월북하여 행방을 모른다[1] 는 설과 한국 전쟁 초기에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한 뒤 좌익 활동 경력 때문에 살해되었다[2] 는 상반된 설이 있다. 전국부녀총동맹 총재 유영준과 제1부총재 정칠성은 모두 월북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가족 및 친척 관계편집

함께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좌익 독립운동가 ‘여성’도 재평가돼야"”. 여성신문. 2004년 9월 30일. 
  2. 다도아트갤러리, 위의 글 중 "부인 허하백, 전쟁 상황에서 잡혀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타살 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