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린(玄潾, 1973년 2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사진가, 사진 평론가, 문화운동가, 정치가이다.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노동당 당대표이다. 현린은 필명이자 활동명이며, 본명은 박성철(朴成哲)이다.

현린
국적대한민국
출생1973년 2월 22일
거주지서울특별시
학력서울대학교
직업예술가, 문화운동가, 정치가
경력노동당 대표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문화예술노동연대 공동대표
정당노동당

유년 및 학창시절편집

현린은 1973년 2월 22일, 아버지 박정웅과 어머니 이태선 사이에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육군 부사관이었던 아버지의 소속 부대를 따라 강원도 일대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전역 후 가족이 부산으로 이동함에 따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 서예와 무예에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합창단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 입학 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후에는 중고등부 성가대 지휘를 맡기도 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기를 원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91년 고등학교 졸업 직후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에 입학하였다.

91년 5월 투쟁에 참여하며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했으나, 같은 해 10월 소련의 해체를 목도해야 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거나 도시를 설계한다고 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대학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다. 이 무렵부터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불교를 비롯한 동양철학과 현대유럽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1993년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한다. 학과 내 인문사회과학 학회를 조직해 활동하며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기존의 학생운동과도 대학교육과도 거리를 둔 채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불교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동서양 현대철학에 토대를 둔 비제도권 교육과 사회운동 방법론 연구에 몰두했다. 신입생 시절 사진에 입문하였고 잠시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에서 활동하기도 하며, 교육 수단으로서 사진과 영화의 활용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교육적 인식론을 비롯한 동서양철학 연구와 현대 제도교육 비판에 몰두하였다. 2002년 석사과정 수료와 동시에 인도로 떠나, 1년 동안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인도 푸네 대학 부설 인도교육연구소(Indian Institute of Education)에서 인도 고대교육철학 문헌연구와 함께 아쉬람 교육시스템에 관한 현장참여연구를 수행한다.

교육 및 예술활동편집

2003년 귀국과 동시에 서울 성동고등학교에서 4년 동안 교육학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학과 창의적 재량, 논술 교과를 가르쳤다. 대학입시와 거리가 먼 교양과목이 가지는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 영화와 글쓰기를 매개로 학생 주도적인 자율적 수업을 통해 파울로 프레이리의 대화식 수업을 시도, 제도권 교육공간에서 제도권 교육의 반교육성을 비판했다.

사진 활동도 지속, 노동, 도시재개발, 평택미군기지 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과 함께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하드락카페],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아이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공연사진을 촬영한다. 2006년 노무현 정권이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민간인 시위 진압에 군병력을 투입한 사건 직후인 2006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1년 동안, 대추리 투쟁을 518 광주민중항쟁과 연계한 사진 아카이브전 [오월]을 온라인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2007년 3월부터 전업작가로 전환, 사진 작업과 평론 작업에 몰두하는 한편, 한겨레 다큐멘터리 제작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2008년 12월부터 3개월 간 인도 바라나시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과 영화작업을 진행했다.

2009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월간사진]에 <사진, 책에 길을 묻다>를 연재, 미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과 소설 및 영화를 매개로 사진에 관한 이해를 넓히는 작업을 시도한다. [월간사진] 연재를 통해 사진계에 공식적으로 등단한 현린은 이후 비판적 사진 작업과 평론 작업을 이어간다. 2013년 2월부터 9월까지는 [월간사진]에 <사진비평 현문현답>을 연재, 사진계 주요 주제와 이슈에 관한 평론 작업을 수행했다.

2011년 12월, [TAKE LEFT] 프로젝트의 기획과 감독을 맡아, 마르크스의 유령이 카메라를 메고 서울을 방문한다면 어떤 사진을 촬영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온오프라인 사진행동을 진행한다. 비판적 사회과학서적 출판사들의 후원을 조직,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대중의 온라인 참여를 유도했고, 2012년 1월 25일부터 31일까지 사진가 이상엽, 정택용, 홍진훤 등과 함께 [TAKE LEFT : 마르크스, 카메라 메고 서울에 오다]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 전시를 진행했다. 당시 갤러리 공간을 마르크스가 머물던 '범죄현장'으로 설정, 갤러리 입구를 폴리스라인으로 두르는 등 연극적 설치요소를 도입하기도 했다.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던 날, 실제로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전시장에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6년 2월에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옥바라지 골목 강제집행 반대운동에 연대하며 마지막 남은 여관 구본장에서 사진전 [빈방]을 열었다. 2017년 11월에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기념 전시로 [혁명가로서의 예술가]를 기획, 경의선공유지미술관 MoRA에서 전시하였다. 2018년 10월에는 사진전 [MW]를 경의선공유지미술관 MoRA에서 열었다. [MW]는 현린의 개인전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일대 공간에 대한 비판적 사진기록작업의 결과물이다. 이 외에도 사진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되 장르와 매체를 확장해 사회비판적인 작업을 이어 왔다.

문화운동 및 정치활동편집

2008년, 교직을 그만둠으로써 정당가입이 자유로워진 시기, 민주노동당 내 PD계열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진보신당 창당운동에 합류한다. 2011년부터 민주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 창립에 참여하는 동시에,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의 외곽조직인 예술인소셜유니온 창립 준비에 참여한다.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는 2012년 8월 25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당명 변경에 따라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은 2015년 5월 1일 창립된다.

창작작업에 전념하던 현린이 정당활동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2014년 3월 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사망 직후,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합류하면서부터이다. 이후 2015년 1월 노동당 4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8월부터는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2015년 9월에는 사회주의 노선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3기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현린은 위원회의 정책역량 강화와 조직정비, 현장연대 강화에 특히 집중했다.

2017년 1월에는 노동당 5기 전국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3월부터는 노동당 부문위원회 합동운영위원회 3기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노동당 정기당대회 준비위원을 맡아 부문위원회를 지역 광역시도당과 같은 위상의 골간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 8월 정기당대회에서 당헌을 개정한다. 2017년 9월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재선, 4기 위원장으로서 2018년 3월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를 광역당부급 의제조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마무리 짓고, 전환된 조직에서 위원장직을 승계하였다.

한편 2016년 10월 예술인소셜유니온에 운영위원으로 합류했으며, 2016년 문화활동가대회 조직위원회 출범과 2016년 11월 4일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및 박근혜 퇴진운동 조직에 참여했다. 문재인 정권기인 2017년 8월,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정책포럼 [예술인들은 어떤 고용보험을 원하는가?]를 개최, 불안정 비정규직 예술노동자들의 연대체인 문화예술노동연대를 조직, 문화예술인의 노동권 강화 운동을 이끌었다. 동시에 박근혜 정권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로 결집한 문화예술단체 간 연대 조직에도 참여, 2017년 9월부터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해 왔다.

2018년 12월 27일 <우리는 무엇으로 붉은가?>라는 제목의 출마의 변과 함께 사회주의 노선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당 9기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2019년 1월 진행된 대표단 경선에서 패배한다. 이후 현린은 노동당 당명을 기본소득당으로 개정하려 했던 9기 대표단과 집행부를, 당명개정 과정의 비민주성과 당의 우경화를 이유로 강력히 반대, 결국 7월 7일 개최된 2019 노동당 정기당대회에서 당명개정 시도를 저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9기 대표단 이하 집행부는 집권 6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사퇴 및 탈당한다. 현린은 2019년 8월 15일 개최된 노동당 6기 5차 전국위원회에서 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1월 진행된 10기 대표단 선거에 출마, 11월 15일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학력편집

경력편집

  • 2003 ~ 2007 : 성동고등학교 교사
  • 2006 ~ 2007 : 사진 아카이브전 [오월], 레이소다
  • 2009 ~ 2011 : <사진, 책에 길을 묻다>, 월간사진
  • 2012 : 사진전 [TAKE LEFT : 마르크스, 카메라 메고 서울에 오다], 갤러리나우
  • 2013 : <사진비평 현문현답>, 월간사진
  • 2013 ~ : 레드 어워드 선정위원
  • 2015 ~ 2016 :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위원
  • 2015 ~ :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 2016 : 사진전 [빈방], 구본장
  • 2016 ~ :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 2017 ~ 2018 : 노동당 부문위원회 합동운영위원회 의장
  • 2017 ~ 2019 : 문화예술노동연대 공동대표
  • 2017 ~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
  • 2017 : 아카이브전 [혁명가로서의 예술가], 경의선공유지미술관 MoRA
  • 2018 ~ : 블랙리스트 제도개선 이행협치추진단 민간위원
  • 2018 : 사진전 [MW], 경의선공유지미술관 MoRA
  • 2018 : 커뮤니티아트 [노인과 도시], 성미산마을극장
  • 2019 : 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9 ~ : 예술인복지위원회 사회보험확대소위원회 위원장
  • 2019 ~ : 노동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