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주(洪景舟, ? ~ 1521년 6월 20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제옹(濟翁)[1],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홍임(洪任)의 차남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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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년 문과에 급제해 1504년 지평이 되고 1506년 사복시 첨정으로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으로 남양군에 봉해지고 동부승지에 이여 도승지에 특진되었다.

1507년 이과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다시 정난공신에 책록되었고 병조판서, 좌찬성, 호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내고 좌참찬이 되었으나 사림파 출신 언관(言官) 즉 간관(諫官)들의 탄핵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1519년 훈구파 일원으로 심정(沈貞), 남곤(南袞) 등과 모의하여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의 그의 신진 세력들을 대거 숙청하고 좌찬성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시호는 도열(度烈)이다.[2]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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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주가 등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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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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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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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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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조방목』
  2. 『금원군 묘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