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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지구자전설과 우주무한론, 인물무분론을 주장했다

홍대용(洪大容, 1731년 5월 12일 ~ 1783년 11월 17일[1])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과학 사상가이다.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과 홍지(弘之)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북학파(北學派)의 학자인 박지원, 박제가 등과 우정을 쌓았으며, 학풍은 유학보다도 군국과 경제장려에 치중하였다.

홍대용
洪大容
청나라 시대 문인 엄성(嚴誠)이 그린 홍대용
청나라 시대 문인 엄성(嚴誠)이 그린 홍대용
조선국 경상도 영주군 군수
(朝鮮國 慶尙道 榮州郡 郡守)
임기 1780년 5월 20일 ~ 1783년 11월 17일
군주 조선 정조 이산
신상정보
출생일 1731년 5월 12일(1731-05-12)
출생지 조선 충청도 천안
사망일 1783년 11월 17일(1783-11-17) (52세)
사망지 조선 경상도 영주
경력 공자, 맹자, 장자, 주희, 김석문, 김원행, 반정균, 엄성, 육비, 마테오 리치, 튀코 브라헤 등에게 과학 성향 실학적 영향을 받은 그는 훗날 연암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등에게 실학적 영향을 줌.
정당 노론 후예 낙론 예하 북학파 잔존 중심 세력
친인척 홍담용(사촌 남동생)
은신군(인척 사돈)
김정희(인척 사돈)
종교 유교(성리학)

은신군, 추사 김정희와도 인척간이 되는데, 그의 사촌 남동생인 홍담용의 딸이 은신군부인 남양 홍씨였으며, 김정희의 큰어머니이자 양어머니인 홍씨 부인이 홍대용 그의 사촌 여동생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당색으로는 노론이었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노론 북학파에 가담하게 된다. 북학파의 선구자로서 일찍이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에게 글과 학문을 배워 당대의 국학(國學)으로 인정되던 주자학이 담헌의 학문적 기초를 이루었다. 그는 연암 박지원과 친하게 지냈고 그 문하생들인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 등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인물인 박제가는 후일 홍대용의 외재종손인 김정희가 다시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북경 방문편집

1765년(조선 영조 41년) 35세 때 숙부인 홍억(洪檍)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軍官)으로 수행, 3개월여를 북경에 묵으면서 엄성(嚴誠),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 등을 만나 담론하며 경의(經義), 성리(性理), 역사, 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한편 천문학·지리학·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쌓고 서양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다. 또 천주당(天主堂)에서 서양 문물을 견학, 학습하고 독일 사람으로 청나라의 흠천감정(欽天監正)을 하는 할레르슈타인(劉松齡)과 흠천감 부감(副監) 고가이슬(鮑友管) 등을 만나 면담했으며, 청나라 관상대(觀象臺)를 여러 번 방문, 견학하여 천문지식을 습득해 오기도 했다. 홍대용의 이와 같은 북경 방문은 당시의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도 제일 처음의 일로서 실학의 도입에서 그 선구적 업적이 크다.

귀국 후편집

귀국하여 천주교와 천문학의 이론을 기록한 유포문답과 과학 사상을 담은 의산문답을 지었다. 지구의 자전설과 경제 정책의 개혁, 과거 제도를 폐지하여 공거제를 통한 인재 등용 등 혁신적인 개혁 사상을 제창하였다. 또한 박지원, 박제가 등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계속하면서 정치·경제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였다.

1774년(영조 50년), 나이 44세 때 귀국 후 수차 과거에 실패하고 음서제에 의해 선공감의 종9품 관리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한 차례의 사직, 삼사의 사헌부 감찰직 등을 거쳐 1780년 영주 군수를 지내게 되었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쉬지 않고 자신의 학설을 직접 사회에 도입해보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시대 환경에 억눌려 별 성과 없이 눈을 감았다.

사상편집

북학파의 선구자이자, 이용후생(중상주의) 학파에 속한 실학자로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지전설과 우주무한론을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화이의 구분을 부정해 주체성을 강조했다.[2] 대표적으로 지구의 자전설을 처음 대중에게 설파했던 바 있다. 당나라 때 자취를 감추었고, 오랜 시간 농민들에게 고파왔던 두 제도, 농토를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均田制)와 부병제(府兵制)를 토대로 하는 경제 개혁을 주장했으며, 특히 신분 제도 개혁에 앞서 과거제를 없애고 공거제(貢擧制)에 의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지금의 초등학교 입학 조건 나이인 8세 이상의 모든 아동을 차별 없이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홍대용은 그의 저서 《의산문답》에서 보여 주듯이 인류의 기원, 계급국가의 형성, 법률·제도 등에 관한 이론 발표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 입각해 “놀고먹는 귀족 계급이 나라와 백성을 좀먹는다(所謂遊民倖位耗國病民 : 《계방일기》).”라며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않는 양반 계급의 허위의식을 지적하는가 하면, 그밖에도 천문·율력(律歷)·산수 등 과학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다. 천문 분야에서도 지구지전설을 주장하였는데, 17세기에 중국이 서양에서 이를 전해받았을 때 지지를 받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그는 과학사상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적인 화이론을 부정하면서, 중국과 조선, 서양까지를 상대화하여 어느 쪽이 '화'이고 '이'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인간과 자연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똑같은 것으로 상대화했다 그리고 당시 사회 계급과 신분 차별에 반대하며 균등한 교육 기회 부여, 재능과 학식에 따른 일자리 분배를 주장했다.[2]

저서편집

  • 담헌서
  • 《담헌설총》
  • 《사서문의》
  • 의산문답
  • 《임하경륜》
  • 《건정필담》
  • 《주해수용》

가족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기타편집

왕실과 인척관계이기도 했는데, 은신군의 부인 군부인 남양홍씨는 그의 사촌형제 김보겸이었다딸이한 군부인 남양홍씨의 자매이자 경주 김씨 김노경에게 보겸홍씨는 김정희의 양어머니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편집

  1. 연암집》 제2권 〈홍덕보 묘지명〉
  2. “홍대용(洪大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8년 6월 1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