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총각
조선의 반란 지도자 (1785-1812)
홍총각(洪總角, ?~1812년 음력 4월)은 조선의 상업인(商業人) 출신 무술가(武術家)이자 농민 반란 주동자이다. 본관은 홍주이며 일명은 홍봉의(洪鳳儀)이다.
![]() 洪總角 | |
다른 이름 | 홍봉의(洪鳳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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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선 평안도 곽산 |
사망지 | 조선 한성부에서 사형 집행됨. |
본관 | 홍주 |
종교 | 도교 |
복무 | 조선 농민군 |
복무기간 | 1811년 ~ 1812년 |
지휘 | 남진군 좌선봉장 |
주요 참전 | 홍경래의 난 |
홍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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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 | 홍총각 |
한자 표기: | 洪總角 |
개정 로마자 표기: | Hong Chonggak |
매큔-라이샤워 표기: | Hong Ch'ongkak |
예일 표기: | Hong Chongkak |
홍봉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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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 | 홍봉의 |
한자 표기: | 洪鳳儀 |
개정 로마자 표기: | Hong Bongui |
매큔-라이샤워 표기: | Hong Pongŭi |
예일 표기: | Hong Ponguy |
생애
편집그는 평안도 곽산의 양인 집안 출신으로 상업인(商業人)의 경력이 있던 역사(力士)였다. 또한 그는 집안의 신분으로 인하여 아직도 혼기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홍경래(洪景來)와 만나게 된 것을 인연으로 그 이후에는 홍경래(洪景來)로부터 발탁된 뒤 홍경래(洪景來)의 사회 변혁 및 개혁에 대한 구상에 큰 공감을 하였으며 아울러 홍경래(洪景來), 우군칙(禹君則)과 뜻을 같이하였다. 또한 그는 힘이 장사인 데다가 특히 말타기와 활쏘기에 출중하였으며 1811년 홍경래 난 주동자 가운데 1명으로 가산 관아를 점령하여 가산군 군수와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박천과 송림에서 관군에게 패배한 뒤 잔류병을 이끌고 정주성으로 퇴각하여 4개월 동안 버티고 관군과 전투하다가 결국 우세한 관군의 공격으로써 이듬해 1812년 정주성이 함락되어 관군에 체포된 뒤 사형(참수형) 집행되었고 그 수급이 조선국 팔도에 효수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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