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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과 학내 갈등편집

당선 과정편집

황라열은 1996년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군복무 중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2000학번으로 입학하였다.[1] 2006년 총학생회장 선거에 서프라이즈(Suprise) 선거운동본부의 정후보로 출마하여 2006년 4월 제49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선거기간에 운동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한총련 탈퇴, 아크로 집회 금지의 공약을 통해 반운동권의 성향을 보여주었다. 인디밴드 가수, 군고구마 장수, 모 기업 대표이사 등 그의 다양한 이력이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어필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졸업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하여 공약의 책임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황라열과 부후보 송동길을 제외하고는 선거운동원들이 한 명도 없었고 선거자금을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45.75%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의 갈등편집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내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먼저 ‘아크로 집회 금지 공약’에서 양 측이 충돌하였다. 그는 중앙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아크로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로 인한 도서관 이용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막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아크로가 학생운동사에서 가지는 역사성과 집회의 자유를 근거로 내세우며 4·19 혁명 기념 행사를 아크로에서 치루려고 하는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 충돌하였다. 결국 총학생회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되었다. 단대 학생회장들의 반대로 그의 공약이 이행되기 어려워지자, 그는 아크로 집회를 임시 중단하기 전까지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운영기구인 ‘총운영위원회’의 소집을 거부하겠다는 공언을 하였고 총운영위원회는 상당 기간 소집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게시판스누라이프에서는 아크로 집회 여부를 두고 서울대학교 학생들 간의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특히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집회를 막겠다는 그의 발언은 논란을 더욱 점화시켰다.

또한 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에 대한 치료비 지급 여부로 인하여 갈등이 또다시 일어났다. 시위 중 부상을 당한 자연과학대학 황인환 학생회장은 학생회비에서 치료비를 지급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총학의 지원이 없는 자신들만의 활동 중 다친 것이고, 지원 기준 범위에의 해당 여부가 모호하다며 반대하였다. 수적인 우위에 있던 학생운동가 출신의 단대회장들은 치료비 지급을 가결하였고,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내에 게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대(제48대)의 학생회의 회계운영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하여 일부 단대회장들은 근거가 빈약한 폭로라고 맞서며 양 측은 또다른 갈등을 겪었다.

한총련 탈퇴 선언편집

단대회장들과의 극명한 충돌은 그의 한총련 탈퇴 공약 이행과정에서 나타났다. 2006년 5월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한총련에서 탈퇴 그리고 학생정치조직과 완전히 결별한다는 선언하였고, 이는 비롯한 언론들의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각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 기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였으며, 일부 보수 언론들은 황라열 회장을 1면과 사설 등에 실으며 학생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라고 평가하였고, 좌파 언론들은 그의 한총련 탈퇴 선언이 갖는 자신들의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의 한총련 탈퇴 선언은 학생운동의 중대한 변화라는 주제로 9개의 주요 신문사 사설에 그의 이름이 장식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그의 선언은 학내 학생운동가, 단대회장들과 일부 운동권 학생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한총련 탈퇴 선언의 비판의 요점은 공약의 이행과정이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것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와 한총련과의 고리는 199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서총련 불신임 결의 이후 사실상 끊어졌기 때문에 탈퇴 선언은 정치적인 선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한총련 탈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표로 당선된 총학생회장이 가지는 공약의 책임성이 더욱 중요하며, 한총련과의 사실상 관계가 단절된 것과 공식적으로 탈퇴를 확인하는 것의 의미는 다르다고 지지를 보내며 서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편 당시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가) 좋은 방향일지는 몰라도 대학생들이 너무 사회 의식이 없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평했다.[2]

탄핵 사태편집

허위 이력 논란편집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히는 황라열 회장

한총련 탈퇴로 인한 파장이 커질 무렵, 2006년 5월말,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에 의하여 황라열 총학생회장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밝혔던 이력 가운데 일부가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왔다.[3] 다른 언론에서도 그의 이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학생들의 해명 촉구가 빗발쳤다. 이력 중 특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후 자퇴'와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이 크게 문제시되었다. 허위경력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 뜨겁게 일자, 고려대학교는 처음에는 입시 자료를 폐기하여 확인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당시 입학사정기록을 확인한 결과 황라열 씨가 의예과 특차 및 정시전형에 지원했으나 모두 불합격하였다"는 관계자를 인용한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황라열 회장은 본인이 직접 학교에 찾아가 확인을 하려해도 자료가 없어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기사에 나온 관계자가 누구인지도 확인을 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한겨레21 수습기자였다는 경력은 이후 사과문을 통해 표기상의 '실수'였다고 밝혔다.[4] 무에타이 프로 선수 경력이나 모 가수의 백댄서 경력은 당시에는 신빙성이 입증되지 못하였으나 탄핵이후 황라열 회장이 각 언론사에 해명자료를 제시하여 더이상 문제시 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이사 경력과 관련하여 성인오락게임 바다이야기와 연루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2006년 6월 8일에는 학교 내 청문회가 열려 그의 허위 이력을 추궁하였다. 청문회를 주최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력의 허위 기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는 "허위이력 중 일부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총학생회의 선거에 쓰인 이력이 아닐뿐더러, 공식적으로 언급 혹은 인정한 적이 없는 개인 싸이월드상의 프로필에 불과하며 절대 탄핵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대부분의 의혹들은 언론의 오보이자 악의적인 공격이며 그에 대해서는 떳떳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탄핵안 가결편집

그가 사퇴를 거부하자, 세현 예산자치회 위원장이 그 직을 사퇴하면서, 황라열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성명서 전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이 성명서는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뒤 대자보 형식으로 학내 곳곳에 붙여졌다. 세현 예산자치회 위원장은 "서울대 총학생회는 사퇴해야 하며, 사퇴하지 않는다면 총학생회를 당선시킨 학생들의 이름으로 탄핵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는 탄핵의 불씨가 되었다. 예산자치회 위원장을 필두로 총학 게시판에는 140여명의 학우들의 사퇴 촉구 게시물이 올라왔고 2006년 6월 12일에는 학내에서 학생들의 서명을 받았다. 결국 황라열 회장과 갈등했던 단대회장들을 중심으로 한 41명의 전체학생회대표자회의 대의원이 서명한 탄핵안이 6월 12일에 발의되었고 당일 탄핵심판의 개의정족수인 대의원 재적 의원의 2/3이 성립되어 탄핵안에 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진을 파견하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역사상 최초의 탄핵 사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발의된 탄핵안(전문 보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박종하 법과대학 학생회장 작성)에 기재된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1. 허위이력
2. 한총련 탈퇴선언에서의 비민주적 행위
3. 학우들의 단결 저해

본격적인 탄핵 논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단대회장들과 대의원들은 탄핵 찬성발언을 하면서 민주주의과 단결의 회복의 차원에서 탄핵을 결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논의 도중 한 대의원이 탄핵은 대표자들끼리 결정하는 것보다는 전체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총투표에 부칠 것을 제안하였으나, 기말고사와 종강으로 학생들의 투표 참여가 어려우며 여름방학이 지나면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비리가 잊혀질 것이라는 이유로 총투표 제안은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총투표로의 해결 논의를 종결시킨 것은 차후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촉발하게 된다. 결국 논의는 종결되어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51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황라열 회장은 탄핵의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이내 그 자리를 떴다.

탄핵의 후폭풍편집

황라열 탄핵안이 가결되자 학내 여론은 탄핵안을 가결한 단대회장들과 대의원에 대한 성토로 들끓었다. 탄핵의 정당성과 절차상의 하자를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되었다. 탄핵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인 태도 역시 기존 정치권과 다를 바 없었다거나 여론수렴 과정이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하고 다분히 일방적으로 탄핵을 처리되었다는 언론의 평가도 있었다.[5]

당시 학내 사이트에서 올라온 문제제기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사퇴할 만한 문제였지만, 극단적인 방법인 탄핵까지는 가는 것은 옳지 않다.
2. 탄핵안 발의부터 가결까지 몇 시간도 되지 않는 점, 학우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부족했던 점은 황라열 반대세력의 정치적 결정이었음을 보여준다.
3. 탄핵발의안에 허위이력은 맞지만, 비민주적 행위나 학우들의 단결 저해라는 사유는 운동권 세력들의 황라열 몰아내기의 명분에 불과하다.
4. 총투표 제안을 거부하는 등, 보다 민주적인 방안을 생각치 않은 대표자들만의 탄핵이었다.

이후 학생들이 내는 성토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탄핵안을 작성한 박종하 법과대학 학생회장은 탄핵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에게 호소하면서도, 탄핵사유의 일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학우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거의 없었음에 대하여 사과하였다. 탄핵에 찬성했던 몇몇 학우들도 허위이력을 제외한 탄핵 사유는 다소 주관적이었음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탄핵의 활시위를 맨처음 당겼던 예산자치회 위원장도 탄핵의 필요성을 재차 말하면서도 의견수렴 절차의 부족함을 일부 인정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대의원들은 탄핵과 관련한 문제제기에 침묵으로 일관하였는데 이에 대해 학생들은 실망감을 표명하였다. 한편 황라열 탄핵 절차가 정당하다는 견해도 학내 사이트에서 제기되었기에, 운동권과 반운동권으로 나뉘어 서로간의 극렬한 논쟁이 연일 벌어졌다.

탄핵 무효 문제와 송동길 직무대행의 사퇴편집

여름방학이 온 이후에도 탄핵 논쟁이 이어지는 와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칙[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상 황라열 탄핵의 효력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6]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칙 제3조 따르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회원은 재학 중인 자로 한다”. 제4조에서는 회원이 선거권·피선거권· 의사결정에 투표할 권리 등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 휴학을 하면 회원에 해당하지 않게 되어 선거권·피선거권·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는데, 학생대표자도 휴학 중이면 당연히 의결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회칙 해석상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단대회장들과 대의원들이 탄핵안 가결 시점에 휴학 중인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휴학 중이라 회칙상 의결권 없는 사람들이 탄핵안 발의와 가결에 참여하였고 이를 제외하면 발의/개의정족수에 미치지 못하므로 황라열 탄핵 가결에 효력상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해석은 당시 토론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으며 탄핵에 참여했던 일부 대의원도 이 해석에 동의했다. 결국, 총학생회의 총운영위원회는 격론 끝에 휴학생은 회원 자격이 없다는 해석에 동의하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휴학생 문제 등에 대하여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논의를 하기로 한 날, 개의정족수 부족으로 회의는 열리지 못하였다. 보건의료노조의 학내진입과정에서 집단폭행을 당한 송동길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및 부회장은 회의가 열리기 전 회의가 무산되면 사퇴를 하겠다는 공언을 하였는데 회의가 무산되자, 기성사회와 학생사회에 환멸을 느낀다며 사퇴를 선언하였다. 송동길 대행의 사퇴 이후 단과대학생회장단 회의라는 새로운 체계가 출범하게 되었고, 대의원들의 묵인 속에 탄핵의 무효 논의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탄핵 설문조사편집

서울대저널이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7]에 의하면 탄핵 이후에야 비로소 소식을 알았다는 학우가 62%였다. 탄핵 자체에 찬성한 학우는 약 42%, 반대는 25%의 견해를 보였다. 탄핵 절차상 의견수렴이 부족하였다는 답변이 75%였다. 그리고 대표자들의 결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총투표로 갔어야 한다는 의견이 54%였다.

탄핵에 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탄핵안 발의와 가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최진혜 약학대학 학생회장은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서울대 학생의 58.4%가 탄핵 자체는 정당하다고 하였으나 69.2%는 ‘탄핵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8] 이 설문조사는 9월 26일(화)부터 서울대 학생 1077명을 대상으로 이틀 동안 강의실 및 본부 앞 잔디 등에서 설문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편, 설문조사 주체가 탄핵안 발의자인 최진혜 약학대학 학생회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중립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은 ‘탄핵 사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8.4%에 해당하는 625명이 ‘탄핵이 될 만한 사유’라고 답했다. ‘탄핵이 될 만한 사유가 아니다’는 23.6%(252명), ‘잘 모르겠다’는 18.0%(193명)를 차지했다.

탄핵 절차 정당성에 관한 질문에는 58.5%(628명)가 ‘총투표 또는 총회를 거쳤어야 했다’고 응답했으며, ‘절차상 문제가 많으므로 무효다’라는 대답도 10.7%(115명)나 됐다.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은 20.2%(217명)였다.

또 학생들은 황라열씨 탄핵 이후 당시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씨(종교학과ㆍ99)가 총학생회장 직무를 대행한 것에 대해 42.2%(453명)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공동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어야 했다’는 31.0%(332명)였다.

설문조사를 주관한 최진혜 약학대학 학생회장은 "(탄핵 절차에서) 일반 학생들의 의견 수렴 과정은 부족했다"고 밝혔다.

탄핵 이후편집

탄핵 직후 그는 정운찬 총장 등과 자퇴와 관련해 상의하였고 정 총장이 이를 만류해 자퇴를 하지 않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학업에 복귀한 이후 SK 와이번스 치어리더들의 앨범 및 SK 나이츠의 홍보 동영상도 제작하는 등 이전부터 [Nol]이란 이름으로 학업과 병행해 오던 음악 관련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첫 앨범 한장으로 국내 멜로디랩의 선두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7년도에는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삼성 아트 앤 디자인 인스티튜트(sadi)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는 힐스톤 파트너스의 대표로 블록체인 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 기업을 연계하는 등 건강한 블록체인 생태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STO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를 강하게 저격하면서 블록체인 업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각주편집

  1. 쿠키뉴스, 인디밴드 가수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백댄서·호객꾼 등 50여 이색경력
  2. 한겨레일보, 정운찬 총장 “대학생들 나라걱정도 해야”
  3. “시사저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성인오락게임업체 현직팀장 겸임”. 2004년 10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3월 28일에 확인함. 
  4. “KBS의 보도”. 2007년 9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3월 28일에 확인함. 
  5. 서울대 총학회장 탄핵 과정`遺憾` Archived 2004년 10월 15일 - 웨이백 머신, 헤럴드경제, 2006년 6월 15일
  6. “헤럴드 생생뉴스, ‘서울대 황라열 탄핵은 무효?’, 2006.8.15”. 2004년 10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6월 5일에 확인함. 
  7. “서울대저널의 설문조사”. 2007년 9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5월 13일에 확인함. 
  8. 황라열 전 총학생회장 탄핵 관련 설문 결과, 대학신문, 2006년 10월 01일.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