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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黃太成, 초명은 黃泰成, 1906년 4월 27일 ~ 1963년 12월 14일)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이며 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성 부상으로 일명 황대용(黃大用)이라고도 불리었다.

황태성
黃太成
북조선 무역성 부상
신상정보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일 1906년 4월 27일(1906-04-27)
출생지 대한제국 경상북도 상주
사망일 1963년 12월 14일(1963-12-14) (57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교도소에서 전격 사형(총살형) 집행됨.
학력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경성 연희전문학교 중퇴
경력 북조선 무역성 부상 겸 무역상 서리
정당 무소속
친인척 생질녀 임미정, 생질서 권상릉, 외사촌 누이동생 박명란, 친척 조카 김민하

그는 1963년 12월 14일을 기하여 이른바 황태성 사건으로 서울교도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상주에 안장되어 있다.

주요 경력과 활동편집

황태성 사건편집

황태성은 '박정희가 친형 박상희보다 더 존경했다'고 알려져 있으면서도 바로 그 박정희에게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인물이다. 아울러 2018년 6월 사망한 김종필의 <김종필 증언록>과 김학민·이창훈의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등을 통해 최근까지도 '김일성의 밀사'인가, 아니면 단순한 '간첩'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1]

박정희는 황태성을 친형인 박상희보다 더 잘 따랐다고 한다. 박정희가 대구사범과 만주군관학교 갈 때 황태성에게 진로와 관련 조언을 구했다. 또한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 황태성이 보증을 서줬다.[2] 황태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외무성 부상(外務省 副相)과 상업성(商業省) 부상을 거쳐 무역성(貿易省) 부상 겸 무역상 서리(貿易相 署理)를 지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서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 통일사업을 하겠다며 대남 밀사로 내려와서 외종매(外從妹)의 아들인 김민하(金玟河)의 협조를 받으며 연락을 취하던 중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연행되어 당시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서 조사를 받다가 끝내 사형에 처해졌다. 황태성이 사형 집행되었을 때 박정희가 황태성의 사진을 보면서 “황태성 선생도 세월은 못 이기시는구나. 많이 늙으셨구나” 했다고 한다.

황태성의 생질녀인 임미정과 그녀의 남편인 권상릉(權相凌)은 2006년 11월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황태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내용을 접수한 바 있다.

황태성이 등장하는 대중문화 작품편집

각주편집

  1. “박정희가 존경했던 황태성, 박정희가 사형시킨 황태성”. 오마이뉴스. 2018.11.22. 
  2. 통일뉴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