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량 (남조)

후량(後梁, 555년 ~ 587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서위에 의해 세워진 국가이다. 주전충후량과 구별하기 위해서, 서량(西梁)[1]으로 불리기도 한다.


555년 ~ 587년
분홍색이 후량
분홍색이 후량
수도강릉
정치
정치체제전제군주제
황제소찰 (555 ~ 562)
소규 (562 ~ 585)
소종 (585 ~ 587)
역사
 • 성립
•멸망
555년
587년
인문
공용어중국어
위진 남북조 왕조들의 계통도

역사편집

양나라의 황족인 소찰후경의 난 직후, 각지의 황족들이 서로 대립하던 중에 소역과 대립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서위에게 원군을 요청해 보호를 받는다는 미명하에 실질적인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 후 소역은 강남의 북제(北齊)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서위는 이에 대항하고, 강남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550년 소찰을 양왕(梁王)으로 삼았다. 이후 즉위하여 원제(元帝)가 된 소역과 서위는 대립끝에 554년 서위의 군대가 강릉에 있던 원제의 정권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소찰을 양나라의 황제에 즉위시켰다.

그러나 후량이 지배한 영역은 강릉주변의 일부지역뿐이었기에 실제론 서위의 제후 정권의 성격이 강했다. 한편 북제는 스스로 지배하에 들어온 소연명(蕭淵明)을 돌려보내 양나라를 계승시키고, 이를 실효있게 지배했다. 소연명은 이후 경제(敬帝)로 즉위했다.

그 후 경제는 (陳)의 무제(武帝)가 되는 진패선(陳覇先)에 의해 퇴위당하고 양나라는 멸망한다. 후량 또한 북주의 선비족 군사에 의해 유린되어 멸망한다.

남북조 통일 직전인 587년 수나라 문제에 의해 후량은 없어졌다. 남조 진나라의 멸망 후 589년 진나라의 동양주자사(東揚州刺史) 소엄(蕭厳)과 오주자사(呉州刺史) 소헌(蕭瓛)이 주인을 자처하며 수나라에 반항했는데, 소엄은 소찰의 5남이었고, 소헌은 명제(明帝) 소규의 3남이었다.

역대 황제편집

후량의 역대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양 고종
(梁高宗)
(후량 선제 추숭)
소명황제
(昭明皇帝)
소통(蕭統) - - 안녕릉(安寧陵)
제1대 양 중종
(梁中宗)
선황제
(宣皇帝)
소찰(蕭詧) 대정(大定) 555년 ~ 562년 555년 ~ 562년 평릉(平陵)
제2대 양 세종
(梁世宗)
효명황제
(孝明皇帝)
소규(蕭巋) 천보(天保) 562년 ~ 585년 562년 ~ 585년 현릉(顯陵)
제3대 양 공종
(梁恭宗)
효정황제
(孝靖皇帝)
(후주<後主>)
소종(蕭琮) 광운(廣運) 586년 ~ 587년 585년 ~ 587년 -

참고 문헌편집

  • 《후량춘추(後梁春秋)》[2]

각주편집

  1. 서준(徐俊) (2000년 11월). 《중국고대왕조화정권명호탐원(中国古代王朝和政权名号探源)》. 호북(湖北) 무창(武昌): 화중사범대학출판사(华中师范大学出版社). 148 ~ 149쪽. ISBN 7-5622-2277-0. 
  2. 吉川忠夫「後梁春秋 ある傀儡王朝の記録」(中公新書357『侯景の乱始末記』(1974年)に収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