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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윌리엄 홀먼 헌트, 1854.

희생양(犧牲羊) 또는 속죄양(贖罪羊, 영어: scapegoat)은 속죄염소, 제물동물이란 뜻으로 사회·문화·심리적 희생자를 의미한다.

어원편집

이 표현의 어원은 1530년 윌리엄 틴들의 성서 오역에서 현재의 비롯되었다. 레위기 16장 8절로 '두 염소 중 한 염소를 제비 뽑아 아사셀을 위해 산채로 황야에 보내라'는 문장에서 아사셀(히브리어:עזאזל)이 잘못 번역된 것이다.

기원편집

고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속죄일에 염소를 속죄의 제물로 사용하였다. 제물인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판 위와 앞에 뿌린다. 그 다음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인들의 모든 죄를 고백해 염소 머리에 씌운다. 그리고 염소를 광야로 내보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모든 죄가 불모지로 날아간다고 여겼다.[1]

의미편집

무언가가 희생됨으로 진짜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잊히게 만든다. 작게는 가족 안에서부터 크게는 대중에게서 까지 발견할 수 있다. 가족 안에서는 누군가가 희생양의 역할을 하여 가족의 고통과 분노를 돌리게 해 결속을 유지한다. 이를 '가족희생양'이라고 하는데 부부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작은 집단에서는 집단 따돌림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는 실업, 경제불황, 범죄 등의 사회문제에 따른 대중의 불만·공포·반감·증오를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한다. 이 심리적 메커니즘의 이용은 대중 지배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인종차별이나 소수집단 차별이 이러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례편집

대표적인 사례로는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있다.

마녀사냥은 마녀를 악마와 놀아나 신앙을 해치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며 처형하는 것으로, 14세기부터 17세기에 유럽에서 이로 인해 약 20만 명 ~ 50만 명의 사람이 처형되었다. 나치 독일은 금융자본을 근거로 하는 모든 정치적 파탄·사회불안·경제적 혼란의 원인을 이민족인 유대인의 열등성·음모로 돌려 유대인 학살을 단행하는 등 전제정치를 확립시켰다.[2]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간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의 내무성이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테러, 강도 등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뒤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로 인한 희생자 수는 약 6,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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