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무키도노

히가시무키도노 (일본어: 東向殿 ひがしむきどの[*], 분메이 3년 (1471년)? - 에이로쿠 2년 6월 11일 (1559년 7월 15일))센고쿠 시대의 여성이다. 스오센고쿠 다이묘 오오우치 요시오키의 정실이다.

생애 편집

오오우치씨의 중신으로 나가토 슈고다이나이토 히로노리의 딸로, 히로노리요시오키가 가독을 이었을 때에, 스에 타케모리의 참언때문에 요시오키에게 주살되었다. 후에 히로노리의 무죄가 밝혀지자, 요시오키는 이 행동을 후회하고, 히로노리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 딸을 정실로 삼았다. 야카타의 동쪽 맞은편이 처소였기 때문에, 히가시무키도노라고 칭해졌다[1]. 요시오키와의 사이에서 에이쇼 4년 (1507년) 11월 15일에 적자 요시타카가 태어났다[2].

성격은 상냥하고 성품도 악하며, 여성스러운 모성을 지녔으며, 아들이었던 요시타카가 문치주의자가 된 원인으로 어머니의 유전이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1]. 남편 요시오키보다 몇 살 연상이었지만, 요시오키가 죽은 후에도 장수하여 덴분 20년 (1551년) 8월, 타이네이지의 변 때에도 많은 시녀들과 뇨보들과 함께 미야노 (현재의 야마구치시)의 신뇨지에 피신하였으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기절해, 호센지에 있던 요시타카는 이를 알고 대혼란 속에서도 의사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大内義隆記』). 이 변으로 요시타카와 손자 요시타카는 살해당했지만, 히가시무키도노는 "80여 년에 걸쳐, 왜인지 목숨을 부지하면서, 덧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후세의 노릇을 할 것이다(八十に余つつ、などか命ながらへて、あらぬ思ひをせん事は、後世のさはりなるべし)" (『大内義隆記』) 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스에 하루카타모리 모토나리 등의 보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1].

에이로쿠 2년 (1559년) 6월 11일에 사망했다. 묘소는 신뇨지에 있다고 전해진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알 수 없으나, 『大内義隆記』의 기록을 사실이라고 추측하고 계산을 하면 90세 정도의 고령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3].

각주 편집

  1. 후쿠오 1989, 61쪽.
  2. 후쿠오 1989, 49쪽.
  3. 후쿠오 1989, 62쪽.

참고 문헌 편집

히가시무키도노가 등장하는 작품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