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프랑스 총선
1958년 프랑스 총선은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성립으로 치러진 총선으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다.
1958년 프랑스 총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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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편집알제리 전쟁으로 정치불안이 가중되던 1958년 5월 13일, 알제리 주둔군은 프랑스령 알제리 수호와 샤를 드 골 장군 복귀를 외치며 반란을 일으켜, 코르시카를 점령하고 파리를 공격하겠다 협박한다.
이에 피에르 프리믈랭 총리를 비롯해 기 몰레 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장, 루이 자키노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총재 등은 드 골 장군을 총리로 추대하며 6개월간 전권을 위임해 헌법을 작성하도록 했다.
9월 28일, 해당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프랑스 제5공화국이 성립했고,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치러졌다.
드골 지지세력은 신공화국연맹을 창당했음에 비해, 진보세력은 5공화국에 대한 찬반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연대가 중요해진 새 선거제도 하에서 진보세력의 몰락을 가져왔다.
선거 결과
편집정당 | 1차 투표 | 결선 투표 | 의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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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 | % | 득표 | % | ||||
신공화국연합 | UNR | 3,603,958 | 17.58 | 4,769,052 | 26.48 | 189 | |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 CNIP | 4,092,600 | 19.97 | 4,250,083 | 23.60 | 137 | |
대중공화운동 | MRP | 2,387,788 | 11.65 | 1,365,064 | 7.58 | 57 | |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 SFIO | 3,167,354 | 15.45 | 2,484,417 | 13.80 | 40 | |
급진당 | PR | 2,695,287 | 13.15 | 1,398,409 | 7.77 | 37 | |
프랑스 공산당 | PCF | 3,882,204 | 18.94 | 3,741,384 | 20.78 | 10 | |
극우 | 669,518 | 3.27 | - | - | 1 | ||
합계 | 20,498,709 | 100 | 18,008,409 | 100 | 576 |
진보세력의 분열로 드골의 신공화국연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압승을 거뒀으며, 12월 21일 드골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