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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강화 총기 탈취 사건

강화 총기 탈취 사건(江華銃器奪取事件)은 2007년 12월 6일 오후 5시 경에 조영국(피의자, 사건 당시 35세)이 경계근무를 마치고 귀대 중인 해병대원의 총기를 탈취한 후 P모 상병(피해자, 사건 당시 20세)을 흉기로 살해하고 L모 병장(사건 당시 20세)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목차

개요편집

범인 조영국은 경계근무를 마치고 귀대 중인 해병대 2사단 소속의 이재혁 병장과 박영철 상병(사건 당시 일병. 순직 후 1계급 특진.)을 코란도 승용차로 차례로 친 뒤 이재혁 병장이 소유한 K2 소총과 실탄, 수류탄 등이 든 탄통을 빼앗아 달아났으며, 더불어 범인 조영국은 흉기를 휘두르다 박영철 상병이 맞아 사망하였다. 12월 12일 도주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으로 자수하겠다는 내용을 기재한 조영국의 자필편지에서 그의 지문을 채취하는데 성공, 종로 단성사 입구에서 그를 검거했다. 결국 조영국은 자신이 대형사건을 일으킨 후, 스스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 변심한 애인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듬해 4월 3일 군용물 탈취 및 초병 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영국에게 1심 군사법원[1]사형을 선고했으나, 8월 12일 2심 재판부는 조영국이 초병임을 인지하고 고의로 살해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징역 15년으로 감형하였다. 이에 군 검찰과 조영국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쌍방 상고하였으나 12월 18일 대법원조영국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사건 진행편집

검문 비난편집

한편 구멍 뚫린 검문이라며 경찰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조영국은 11일 백양사 휴게소에 총기를 버렸다며, 부산의 한 우체통에 편지로 남겼다. 그리고 그 곳으로 갔을 때에는 이미 범인은 서울로 진입했다. 또 앞서 6일에는 서서울 요금소를 조영국이 지나간 4분 후에야 서서울 요금소에 검문을 시작하며, 용의 차량과 같은 번호의 자동차가 지나간다는 시민의 제보에도 불구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조영국을 잡을 기회를 다시 한번 놓치며, 화성경찰서 지령실 관계자는 발안요금소에 배치된 직원에게 검문검색 통보후 8시 10분쯤 용의 차량이 지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외진 도로나 국도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잡기 힘들었다고 해명해 경찰의 허술한 검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7]

각주 및 기사 자료편집

  1. 민간인은 군사재판의 대상이 아니지만 군형법 상 간첩, 유해 음식물 공급, 초병에 대한 범죄(살해, 살해미수, 상해, 협박, 폭행), 군용물에 관한 범죄, 초소침범, 포로에 대한 범죄는 군인에 준하여 군사재판을 하도록 되어 있다.
  2. 총기 탈취 용의자 몽타주 배포 YTN 뉴스, 2007년 12월 7일
  3. 탐문수사 본격 시작…주민 불안 가중 YTN 뉴스, 2007년 12월 9일
  4. 총기탈취 유력 용의자 ‘무혐의’ 파이낸셜뉴스, 2007년 12월 10일
  5. 총기발견 단서된 메모지 연합신문 / “부엌칼로…죽일뜻 없었다” 용의자 편지 구체적 묘사 2007년 12월 12일 기사(내용은 11일 내용)
  6. 강화 총기탈취범 붙잡았다 한겨레 / 총기탈취범 검거, 뻥뚫린 경찰 검문검색… 범인 전국 ‘활보’(사건전체 종합) 경향신문 2007년 12월 12일
  7. “무기 탈취범 검거” 범인에 놀아난 군·경… 검문 번번이 뚫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쿠키뉴스, 2007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