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01년 9월 11일에 미국을 노린 테러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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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한국어: 구일일 테러, 九一一 terror, 영어: September 11 attacks 셉템버 일레븐 어택스[*], 9/11 attacks)는 약칭 9/11으로도 불리며, 2001년 9월 11일미국에서 발생했던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이다. 이로 인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고 버지니아주 알링턴 군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아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약 2,996명의 사람이 사망하고 최소 6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2002년 조지 W. 부시가 발의한 국토안보법에 의거, 미국 국토안보부 개설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9.11 테러
September 11 Photo Montage.jpg
위치미국의 기 미국 뉴욕주 뉴욕 (첫 번째·두 번째)
미국의 기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군 (세 번째)
미국의 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네 번째)
발생일2001년 9월 11일 ()
오전 8:46 – 오전 10:28 (UTC-4)
종류항공기 납치, 대량 학살, 자폭 테러
사망자2,996명[1]
부상자6,000명 이상
공격자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 지도)

사건 흐름편집

 
세계 무역 센터가 피격당한 방향.
 
세계 무역 센터가 피격당한 층수.

사건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 단체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 오전 7:59: 아메리칸 항공 11편(AA11)의 보잉 767기가 81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보스턴로건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 항공편의 승객 중에는 5명의 테러범이 포함되어 있었다.
  • 오전 8:14: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UA175)의 보잉 767기가 56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AA11편처럼 로건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 항공편의 승객 중에도 5명의 테러범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AA11편 항공기는 매사추세츠주 중부 상공에서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되어 남서쪽으로 항로를 돌렸다.
  • 오전 8:20: 아메리칸 항공 77편(AA77)의 보잉 757기가 5명의 테러범을 포함하여 58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부터 이륙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 오전 8:42: 유나이티드 항공 93편(UA93)의 보잉 757기가 4명의 테러범을 포함하여 37명의 승객과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이륙하여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향하여 비행을 시작했다.
  • 오전 8:42에서 8:46: UA175편뉴욕 시로부터 230km 가량 떨어진 뉴욕주 올버니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쪽으로 항로를 선회했다.
  • 오전 8:46: AA11편이 시속 790km의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제1 세계 무역 센터)의 북쪽 면에서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했다. 항공기는 크게 파괴되지 않은 채 건물에 박혔다.
  • 오전 8:50에서 8:54: AA77편오하이오주 남부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동쪽으로 항로를 선회했다.
  • 오전 9:03 UA175편이 시속 950km의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제2 세계 무역 센터)의 남쪽 면에서 77층과 85층 사이에 충돌하였다. 비행기의 우측 엔진을 포함한 잔해들이 빌딩의 동쪽과 북쪽 측에서 떨어져나가 6블록 떨어진 땅에까지 낙하하였다.
  • 오전 9:28: UA93편이 오하이오 주 북부 상공에서 납치되어 남동쪽으로 항로를 바꾸었다.
  • 오전 9:37: AA77편이 시속 853km의 속도로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의 서쪽 면에 충돌하여 들어가 큰 화재를 일으켰다.
  • 오전 9:59: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UA175편과의 충돌 후 약 56분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 오전 10:03: UA93편이 시속 926km의 속도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129km 떨어진 곳에 추락하였는데, 이는 조종석에서 항공납치범들과 승객들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후 발표된 바에 따르면, 승객들은 세계무역센터펜타곤에서 일어난 충돌에 대해 알게 되었었으며, 납치범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후 9/11 위원회는 납치범들이 이 항공기를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 의회의사당 또는 백악관에 충돌시키려 했었다고 추측하였다.
  • 오전 10:28: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충돌 후 1시간 42분만에 완전히 붕괴되었고, 부속건물이던 메리어트 호텔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 오전 10:59: 화재로 인해 펜타곤 건물의 일부의 5층이 무너져 내렸다.
  • 오후 5:20: 47층짜리 제7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이 무너졌다. 제1·2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 때 철골들의 잔해들이 튕겨나와 제7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을 타격한 것이 붕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추측된다.
  • 오후 5:42: 대한항공 085편이 강제로 착륙한다.

사건과 그 여파편집

이 테러는 테러범을 포함하여 2,996명의 사망자와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은 전원 사망하였고,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는 약 2,500명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미국 전역은 하루만에 일어난 큰 테러사건으로 인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되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테러 발생 직후 CNN 방송망을 시작으로 사건의 상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9·11 테러는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진 좌측의 남쪽 타워에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충돌해 불타고 있다. 그에 앞서 우측의 북쪽 타워에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충돌했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1조 4300억 원),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약 52조 원),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약 12조 원), 이외에도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테러에 이용된 각 항공기마다 4~5명의 납치범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모하메드 아타 등 19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은 비행기 충돌과 동시에 전부 사망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를 주요 용의자로 지적했으며, 그 밖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산하의 무장조직인 하마스(HAMAS), 이슬람 원리주의 기구인 지하드, 레바논헤즈볼라 등 다른 이슬람 테러조직들도 관여했을 것으로 보았다.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29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어 전국의 정부 건물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국제연합(UN), 시어스 타워(현 윌리스 타워), 디즈니랜드 등 주요 건물을 폐쇄하였다.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 결정을 내린 뒤,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 장비를 파견하였다.

사망자 + 납치범
뉴욕 세계 무역 센터 2,606[2][3]
아메리칸 항공 11편 87 + 5[4]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65[5]
알링턴 펜타곤 125[6]
아메리칸 항공 77편 64[7]
생크스빌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44[8]
합계 2,996

테러와의 전쟁편집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테러 단체, 국가에 맞서 군사적, 정치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영국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하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자유로운 전투·폭격기를 이용한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하였다. 이어 다음달 22일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의 목표로 삼았던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뿌리뽑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후 미국은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알카에다와 동맹한 이라크 정부를 20일 만에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는 등 대 테러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2011년 5월 제로니모 작전의 일환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후 수장하였다.[9]

사건이 발생한지 3개월만인 2000년 12월 11일 존 애슈크로프트 미국 법무장관은 로버트 멀러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모로코계 프랑스인인 자카리아스 무사위를 6가지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하고 "알 카에다는 이제 매우 싫어하는 재판과 두려워하는 판결과 맞닥뜨릴 것"이라고 했다.[10]

독일 검찰은 9.11테러 비행기 납치범 가운데 한 명인 모하메드 아타가 이끄는 함부르크의 알-카에다 세포조직 창설 멤버로 조직의 자금거래를 지원하고 조직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며 모로콜 출신의 독일 유학생 압델가니 음주디(32)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변호인들은 음주디가 9.11테러의 주범들과 친분은 있지만 테러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지는 못했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함부르크 고등법원이 구속된 음주디에 대해 2003년 12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이 최근 법원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제출한 자료에 음주디가 9.11테러 계획을 몰랐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면서 "이 정보의 신빙성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나 허위임을 입증할 수도 없다"고 밝히며 석방을 명령하고 재판을 진행하여 200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 연방재판소도 2005년 6월 9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전세계에서 911 테러로 기소된 첫번째 무죄확정이나 오토 쉴리 독일 내무부 장관은 "국제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위험인물"이라고 하면서 추방을 명령했다.[11]

군사법원은 이들이 지난 2012년 5월 정식 기소됐으며, 30차례 넘는 재판 전 심리를 거쳐 공식 재판 일정이 확정됐다고 밝혔습니다.

테러 주범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해 피고인 5명은 2002년과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뒤 미국 해군기지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약속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뉴욕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추진됐으나 정치적 논란 속에 군사법원이 2012년 5월 기소하여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30차례의 재판 전 심리를 거쳐 정식재판에 회부되어 2021년 1월 재판을 시작한다.

'9·11 테러의 설계자(The principal architect of the 9·11)'로 불리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추격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 2003년 3월 1일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체포되어 911 테러를 포함해 전쟁범죄 및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2006년부터 13년 동안 관타나모에 수감 중이며2008년 관타나모 군사위원회에서 사형을 선고 받자 "이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순교를 기다려왔다"고 말했으나 9·11 테러 피해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소송에서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보낸 편지에서 "현재는 모하메드가 법정 진술에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이 바뀔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사형집행을 면하게 해줄 경우 테러 피해자들을 위해 알카에다의 조직 및 명령 체계 등에 대해 진술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말했다.[12]

9.11 테러 음모론편집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편집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이란 부시 정권이 유태 세력과 공동으로 9.11 테러를 실시했다는 자작극 혐의를 말한다. '진보연구학회'를 이끄는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박사는 9.11사건의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그룹이 초기에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말한다.[13]

  • LIHOP(let it happen on purpose): 정부가 테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았음에도 일부러 무시하거나 테러리스트들을 방관했다는 주장.
  • MIHOP(made it happen on purpose):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테러를 계획했고, 알카에다와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체인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의혹을 다룬 영화 'JFK'를 감독한 올리버 스톤은 9.11사건을 다룬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개봉하면서 "음모론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미국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9.11이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13] 국내에 잘못 들어온 소식으로는 "하지만 급작스러운 테러상황에서 유대인이 장악한 언론이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촬영했으며, 쌍둥이 빌딩의 20%를 렌트하고 있는 유대인은 한 명도 죽지 않았는데다가 부시 정권이 곧바로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작한 것을 비추어 보아 유대인과 부시 정부의 합작 테러사건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막상 실제로의 통계 조사 결과는 이들 주장의 오류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출처 필요]

윙딩스 음모론편집

 
윙딩스체와 일반 글씨체의 비교. 실제로 "3"의 건물 모양은 건물이 아닌 문서 모양이다.

알카에다컴퓨터로 테러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는 음모론이다. 당시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 편명인 'Q33NY'를 워드에 입력한 후, 이를 윙딩스(wingdings) 글씨체로 바꾸어서 보면 테러를 암시하는 문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테러에 이용된 비행기 4대 중 'Q33NY'라는 편명의 비행기는 없으며, 전문가들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큰 이야기라고 지적하였다[1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중 한국인 사망자수는 28명
  2. “Accused 9/11 plotter Khalid Sheikh Mohammed faces New York trial”. CNN. 2009년 11월 13일.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3. “Alleged 9/11 Plotters Face Trial Blocks From WTC Site”. WIBW. 2009년 11월 13일. 2012년 3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1월 24일에 확인함. 
  4. “American Airlines Flight 11”. CNN.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5. “United Airlines Flight 175”. CNN.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6. “Pentagon”. CNN.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7. “American Airlines Flight 77”. CNN.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8. Roddy, Dennis B. (October 2001). “Flight 93: Forty lives, one destiny”. Pittsburgh Post-Gazette. 2003년 10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9월 2일에 확인함. 
  9. “BBC News – Osama Bin Laden dead, US President Obama confirms”. bbc.co.uk. 2011년 5월 2일. 2011년 5월 2일에 확인함. 
  10. [1]
  11. 독일법원 911테러 연루 혐의자 최종 무죄확정
  12. [2]
  13. 9·11테러 '음모론' 진실은 어디 있나?, 뉴스메이커 742호, 2007-09-18
  14. 음모론 제기한 ‘무서운 스펀지’, 시청률 상승 Archived 2016년 3월 5일 - 웨이백 머신 《TV리포트》2007년 11월 12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