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혜성
가혜성(加兮城)은 삼국항쟁시대 백제의 성곽으로, 김유신 장군이 백제의 7성을 공취한 성곽의 하나이다.
위치 편집
규모 및 형태 편집
전적사료 편집
신라 선덕왕 13년(644) 9월 왕명으로 김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성열성(省熱城), 동대성(同大城) 등 7성을 쳐서 크게 승리하고 가혜진(加兮津)을 열었다.[2]라는 관방유적 가운데 가혜성은 가은산 강안(江岸)에 웅거하여 진도를 개척한 괴곡진(槐谷津)에 옛 가혜진이 있었다.
보고자료 편집
- 충주댐 수몰전 괴곡나루 건너에는 산중에 토성지가 두 곳 있으니 타원형으로 뻗어 간 산성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구조에 있어서나 상당히 대규모이고 견실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이 토성은 김유신 열전에 가혜성(加兮城)이라한 ‘둔저성(屯猪城)’과 ‘가음산성(可陰山城)’이니 거금 1,700여 년 전의 신라와 백제의 수 없던 격전지이다.[3]라고 가혜성을 둔저성과 가음산성으로 나누어 일컬었다.
- 2004년 3월 27일 제천 가은산에서 가혜성 토성의 발견된 것이 언론기관에 보도되었다.[4][5][6]
- 2004년 4월 9일 학예연구사 권기윤과 류금열은 답사하여 삼국시대 토기편을 수습, 암벽에 암각자는 풍화로 식별할 수 없었다.
- 2004년 4월 14일 가혜성 보루의 석축 발견과 삼국기 토기편을 수습했다.
- 2008년 5월 22일 가은산의 자연성곽을 재답사하여 성안에 토성과 석축을 실측하면서 삼국기 토기편과 와편을 수습하였다.[7]
자연환경 편집
- 김유신 장군은 644년 9월에 백제의 7성을 공취하고 가혜진을 열면서 645년 정월에 개선하여 약 4개월간 청풍강 유역에서 전투한 관탄(串灘)과 내매(迺邁)는 가혜진과 연관된 격전지로써 조포리 강변에서 삼국기 철제화살촉을 수습하고, 옛날에 성안에서 선주민이 말방울을 수습하기도 하였다.[8]
- 옛 가혜나루는 제일형승으로 가은산에 백제의 가혜성이 있는 기암절벽의 석봉은 이황이 명명한 현학봉(玄鶴峰), 채운봉(彩雲峰), 오로봉(五老峰)[9]과 미륵봉, 투구바위, 새바위, 석문, 처마바위, 정오바위 등 만물상을 조각한 자연사 조각전을 음미하면서 청풍호와 청풍호반의 형승에 매료된다.
각주 편집
- ↑ 《신증동국여지승람》석토성으로 비정한다.
- ↑ 《삼국사기》
- ↑ 《제천군지》(1969). 제천군지에 기록한 가혜성은 2004년 발견되어 실체가 확인되었다.
- ↑ 목성균 기자, “제천 가은산서 가혜성 발견”, 《충청매일》, 2004년 4월 5일 작성
- ↑ “제천서 가혜성 추정 토성 발견”, 《연합뉴스》, 2004년 4월 5일 작성
- ↑ 서병철 기자, "제천서 백제시대 토성발견”, 《중부매일》, 2004년 4월 5일 작성
- ↑ 《청풍 성열현인 악성 우륵의 사료집성》(2013)
- ↑ 《청풍 성열현인 악성 우륵의 사료집성》(2013)
- ↑ 《퇴계집(退溪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