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감영(江原監營)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原州市)에 있는 조선시대 관찰사의 업무 청사이다. 현재의 도청(道廳) 소재지 및 도청 건물에 해당한다.

원주 강원감영
(原州 江原監營)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강원감영 후원의 전경.
종목사적 제439호
(2002년 3월 9일 지정)
면적9,608m2
시대조선시대
위치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 85 (일산동)
좌표북위 37° 20′ 52″ 동경 127° 57′ 02″ / 북위 37.34778° 동경 127.95056°  / 37.34778; 127.95056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역사적 사실로서의 감영 편집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관찰사의 소재지이다. 따라서 감영이 있던 원주는 강원도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395년(태조 4년)에 처음 감영이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년)에 8도제 종식되고 새로 23부제가 실시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1]

감영 시설 편집

강원감영에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같은 건물이 있었다.

  • 선화당(宣化堂) : 종2품 관찰사 업무 공간
  • 청음당(淸陰堂) : 관찰사를 보좌하는 종5품 도사(都事)의 업무 공간
  • 대은당(戴恩堂) : 관찰사 가족의 생활 공간인 내아(內衙)의 중심 건물
  • 관풍각(觀風閣) :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 봉래각(蓬萊閣) :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 영리청(營吏廳) :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의 업무 공간
  • 포정문(布政門) : 감영 정문[2]

감영 인근 시설 편집

  • 객사(客舍) :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감영을 방문한 관원의 숙박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3] (감영 북동쪽에 인접)
  • 중영(中營) : 감영 소속 군사를 지휘하는 정3품 중군(中軍)의 지휘 공간 (감영 북쪽에 인접)
  • 이아(貳衙) : 감영이 있는 원주의 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공간[4] (감영 남동쪽 약 200미터 거리에 위치)
  • 4대문 : 원주 고을의 동, 서, 남, 북 4개 문[5]
  • 어서비각(御書碑閣) : 인조 임금의 아내인 인열왕후(仁烈王后)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비각[6] (감영 동남동쪽 약 300미터 거리에 위치)

문화재로서의 감영 편집

200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9호 원주강원감영지로 지정되었다.[7] 이후 2011년 7월 28일 원주 강원감영으로 사적 명칭이 변경되었다.[8]

원주시에서 매년 10월에 강원감영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강원감영제 기간에 감영 안으로 들어가 행사에 참여하거나 기념품 또는 먹거리를 구입하려면 행사 기간 동안에 화폐 용도로 사용되는 상평통보로 환전해야 한다.

현재의 감영 건물 편집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 포정루, 동서남북의 4대문, 객사 및 각급 관아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대문), 청운당(내아)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관아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갤러리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23부제가 실시되면서 강원도 행정의 중심지는 춘천과 강릉으로 이전된다. 기존 강원도가 춘천부, 강원부로 크게 나뉘고, 남부 일부는 충주부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23부제가 폐지되어 13부제가 시행되자 춘천이 강원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2. '관동포정아문(關東布政衙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관동은 강원도를 뜻한다.
  3. 원주 객사는 '학성관(鶴城館)'이라고 불렸다. 울산의 객사도 같은 한자의 '학성관'이다.
  4. 조선 후기에 들어서 원주 고을 다스리던 원주목사를 관찰사가 겸임하였는데, 관찰사는 강원도 전체의 행정을 담당하였으므로 통상적인 행정은 따로 임명된 종5품 판관이 담당하였다. 판관이 근무하는 청사가 이아(원주의 2번째 청사인 원주목 관아)이다.
  5. 원주의 4대문은 성곽(읍성)이 없이 문만 설치되어 있었다. 동문이 수명문(水明門), 서문이 취적문(翠滴門), 남문이 진남문(鎭南門), 북문이 공북문(拱北門)이다.
  6. 『영조실록』 92권. 영조 34년 11월 25일 2번째 기사에 따르면 1758년(영조 34년) 11월에 영조 임금이 직접 비문을 지었다.
  7. 문화재청고시제2002-14호(문화재지정), 제15044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02. 3. 9. / 79 페이지 / 144.1KB
  8. 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제17560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1. 7. 28. / 392 페이지 / 901.5KB

외부 링크 편집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