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高詡, ? ~ 37년)는 전한 말기 ~ 후한 초기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계회(季囘)이며 평원군 반현(般縣) 사람이다. 전한의 상곡태수 고가(高嘉)의 손자이자 광록대부 고용(高容)의 아들이다.

생애 편집

임자로 낭중(郞中)에 임명되어 출사하였다. 집안 대대로 《노시》(魯詩)를 전수하였고, 지조 있는 행동으로 명성이 있었다.

왕망이 제위를 찬탈하니 아버지와 함께 장님 행세를 하여 벼슬자리를 떠났고, 후한 건국 후 대사공 송홍의 천거로 낭(郞)이 되고 부리(符離長)에 제수되었다. 이후 관직을 떠났다가 다시 부름을 받아 박사(博士)가 되었다.

건무 11년(35년), 대사농에 임명되었다. 품행이 방정하여 조정에서 칭송받았다. 2년 후 죽었고, 조정에서 장례 비용과 묫자리를 내려주었다.

출전 편집

전임
이통
후한대사농
35년 ~ 37년
후임
풍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