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덕 승총명록

구상덕 승총명록(仇相德 勝聰明錄)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에 있는 조선시대기록물이다.

구상덕 승총명록
(仇相德 勝聰明錄)
대한민국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443호
(2006년 4월 6일 지정)
수량5권
시대18세기
소유고성군
관리고성군
위치
주소경상남도 고성군 송학로113번길 50 (고성읍, 고성박물관)
좌표북위 34° 58′ 45.6″ 동경 128° 19′ 14.6″ / 북위 34.979333° 동경 128.320722°  / 34.979333; 128.320722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2006년 4월 6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43호 고성 송산리 승총명록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현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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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찬씨 댁에 소장된 『勝聰明錄』은 月峯 仇相德(1706-1761)이 쓴 일기로서, 그가 20세가 되던 1725년부터 56세로 별세한 1761년까지 3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승총명록의 가치는 18세기 농촌사회의 구체적인 삶과 그 변화과정을 여실하게 파악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살던 고성지역을 중심으로 벼농사와 보리농사의 파종과 이앙시기, 춘궁기의 생활문제, 물가의 등귀, 도둑, 전염병, 기근, 자녀교육, 마을의 관혼상제, 官家와의 관계, 여러 가지 奇言怪語 등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온갖 사건들이 여과 없이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이 일기는 앞으로 조선 후기 농업사, 민속사, 사회사, 경제사, 교육사 등 여러 각도에서 이용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시험장소가 있는 성주, 의령, 진주 등 여러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남긴 기행일기 속에서 당시 지방 사족들의 생활행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또 영조 4년(1728) 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고성지역과 인근 고을의 사족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2]

참고로 昌原具씨는 원래 '仇'씨로서 義昌縣 土姓의 하나였다. 그런데 정조 때 '具'씨로 바꾸라는 명이 내려져 그 이후 이 집안의 사람들은 '具'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昌原具氏世譜』(丁巳譜: 1797) 昌原具氏賜姓筵敎文 및 『正祖實錄』 권48 22년 6월 戊戌조 참조)[2]

『승총명록』 5책에 실린 일기의 시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2]

  • 제1책 : 영조 원년(1725) 7월 29일∼영조 7년(1731)[2]
  • 제2책 : 영조 8년(1732)∼영조 13년(1737)[2]
  • 제3책 : 영조 14년(1738)∼영조 25년(1749)[2]
  • 제4책 : 영조 26년(1750)∼영조 31년(1755)[2]
  • 제5책 : 영조 32년(1756)∼영조 37년(1761)[2]

그 동안 관아일기나 사환일기, 기행일기, 생활일기 등 여러 종류의 일기가 많이 세상에 소개되었고 이중에는 시기가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승총명록』처럼 지역사회의 일상적인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자료는 고성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변화상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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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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