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金復東, 1930년 4월 27일 ~ 2022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의료인이다.

생애 편집

1930년 4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아버지 김영한(金永漢, 1905. 7. 7 ~ 1980. 7. 5)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무경(洪戊庚, 1908. 9. 18 ~ 1997. 8. 9)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증조부 김광규(金光圭, 1845. 6. 21 ~ 1922. 5. 6)는 경상도 안동대도호부(현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1891년(고종 28) 증광시 진사시에 3등 138위로 입격했다.

1951년 대구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55년까지 군의관으로 근무하였다. 1955년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성요셉 병원(St. Joseph Hospital)에서 인턴십을 수료했다.

1959년 퍼거슨, 화이트 교수 지도 하에 피츠버그 대학교 정형외과에서 수련을 하였는데, 당시의 논문 "Clearance Rates of Sodium-24, Potassium-42 and Iodine-131 in Normal Dog Hip Joints"는 1960년 영국 네이처 지에 등재되기도 했다. 1965년에는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정형외과학 전공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재직기간 및 현재까지도 대한정형외과학회장 등 다양한 협회의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한센병 관련 치료센터인 여수애양원(Wilson's rehabilitation center), 장애인재활협회 등에서 숨은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의 그늘에서 소외되어 온 사람들의 재활 및 치료에서 헌신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했다.

외면당하고 소외당했던 한센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위해 항상 낮은 데로 고개를 낮추며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였던 선생은 학문적 성과 및 세계 수부외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동백장(1986) 및 무궁화장(1994)을 수훈, 2010년 세계수부외과학회(ISSH)에서 매년 선정하는 수부외과의사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수부외과 선구자(pioneer of hand surgery)에 한국인 최초로 공동 선정된 영예를 안았다.

200여 편의 국내, 국외 논문 및 나병환자에 대한 물리치료(1969), 정형외과학(1982) 등의 저서를 내어서 세계의 의학에 대한 선구자가 되었다.

그 뒤 1990년 9월 1일부터 1994년 8월 31일까지 제12대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