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투라 미술(Art of Mathura)은 인도에서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가 인도에서 번성한 기간 중 인도 중심부 마투라를 중심으로 하여 기원전 2세기를 기점으로 조각 형태로 대부분 생존한 특정 인도 미술을 가리킨다.[1]

마투라 불상

쿠샨인(人)은 인도 갠지스강 유역에 침입하여, 자무나강 기슭인 마투라에 도읍하여 중원(中原)에서 군림했다. 특히 카니슈카왕(144?∼170?)은 불교도 보호 숭배하여, 아소카왕을 본받아 경전(經典)의 편찬을 실시하고, 사원 건립을 장려했다고 한다. 법상유식(法相唯識)의 체계를 만든 용수(龍樹)나, 불교 시인인 마명(馬鳴) 등의 소위 대승불교(大乘佛敎) 고취자(鼓吹者)가 나타났고, 한편으로는 자이나교(敎)도 세력을 얻어 조형활동을 겨루었다. 원래 마투라 지방은 테라코타 조상(彫像)에 의한 상민(常民) 미술의 근거지로서, 기원전 6세기∼5세기경부터 알려졌고, 많은 유품을 출토시키고 있다. 거기서는 예로부터 전통적인 인도인의 미의식이 지모신상(地母神像)이나 남녀대상(男女對像)에 발휘되고 있었는데, 기원전 2세기 전반, 시쿠리산(産)의 황반(黃斑)이 있는 적색 사암(砂岩)을 사용하여, 이 지방에 갑자기 불교 미술이나 자이나교 미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도인에게 지금까지 금기였던 석가모니의 상이 조립되기에 이르렀다. 서구 학자에 의하면 이 조불(造佛)활동을 간다라 조상(彫像)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쿠마라스와미(인도인 미술사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이 있다) 등은 독자적인 조불활동으로서 마투라파(派)를 중시하고 있다.

마투라 조각의 특색은, 인도인의 미의식을 기조(基調)로 한, 건강한 육체미와 명쾌한 표정을 가진 조형이라는 점에 있다. 소라같이 틀어 올린 육계 밑에 크게 뜬 눈이나, 강한 면(面) 구성을 가진 코, 두꺼운 입술로 된 밝은 표정이 비치고 있다. 굵은 목과 단단한 가슴 폭이 있는 체구, 커다란 손발 등이 이러한 조형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왕자·제왕의 이상미(理想美)가 그대로 불상, 특히 석가모니의 상에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슝가 왕조 이래 불전(佛傳)이나 본생담(本生譚)에 표현된 인도인의 골상(骨相)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육계나 백호(白毫),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법륜상(法輪相)·삼보표(三寶標) 등, 각자의 초인적 자질을 나타낸 육체적 특징을 분명히 조형화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판비(板碑) 형식의 불좌상(佛坐像)에서는 완전한 정면 관조(觀照)가 되어, 오른손의 시무외인(施无畏印)의 배면(背面)은 파내지 않고 어깨에서 바위를 파다가 남겨 두고 있다. 편단(偏袒) 우견(右肩)의 옷을 표현도, 엷은 나(羅)나 명주와 같이 아래 육체를 비치게 하여 건강한 육체미를 보이고 있다. 마투라에서는 극히 초기의 불상 표현에 있어서, 조형상 분명히 각자인데도 명문(銘文)에는 보살이라고 쓰여 있는 예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보살상은 제왕(帝王) 및 현세의 유정(有情)의 이상미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물론 차차 귀족의 장신구나 머리 장식을 단 보살상도 만들어졌고, 청년의 이상미가 그 속에 담겨지게 되었다.

민간신앙의 인기자(人氣者)로서 불교의 수호신이 된 약차 여신(藥叉女神)이나, 복(福)의 신인 쿠베라, 태양신 수리아 등이 자유로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표현은 고대파의 딱딱한 조형을 탈피하고 있다. 특히 난순주(欄楯柱)의 수정여신(樹精女神)은 건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며 풍만한 유방과 노출된 허리, 그리고 매혹적인 미태(媚態)까지도 보이면서 표현되어, 인도 미의식의 위험한 일면과 호색벽(好色癖)의 일면이 이미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 무렵 불전(佛傳)이나 본생담의 주제가 이러한 수정여신을 표현한 난순주나 가로대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것도 흥미가 있다. 또한 제왕상도, 두부(頭部)가 없어졌으나 염고진좌상(閻膏珍坐像)이나 카니슈카왕(王)의 입상 등이 제작되고, 그들이 유목 기마민족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승마복이나 장화, 장신구의 의장에서 세계적 성격을 엿볼 수가 있다. 쿠샨 왕조의 사람들은 또한 자이나교도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며, 불상 조각을 닮은 조형감각이나 장식문양(紋樣)을 가진 자이나교 미술작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리하여 인도인의 건강미나 제왕의 이상미가 쿠샨 왕조에 확립되어, 그것이 다음의 굽타 왕조에서 개화(開花)하여 인도 고전 조각이 완성되었다.[2]

각주 편집

  1. Paul, Pran Gopal; Paul, Debjani (1989). “Brahmanical Imagery in the Kuṣāṇa Art of Mathurā: Tradition and Innovations”. 《East and West》 39 (1/4): 111–143. JSTOR 29756891. 
  2.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마루타 미술〉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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