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성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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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성(무안) 박씨(綿城 朴氏)는 전라남도 무안군(옛이름 면성)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무안 박씨(務安 朴氏)라고도 한다.
관향 | 전라남도 무안군(옛이름 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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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박진승(朴進昇) |
집성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전라남도 진도군 전라남도 해남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경상북도 영덕군 |
주요 인물 | 박섬, 박승중, 박의룡, 박호, 박선장, 박의장, 박창하, 박두성, 박종길, 박승재, 박세환, 박석무, 박병윤, 박희현, 박성효, 박우섭, 박현출, 박종팔, 박정희, 박정화, 박민서, 박재상, 박주민, 박만재, 박현석, 박유찬 |
인구(2015년) | 90,785명 |
면성(綿城) 박씨는 본관 면성 박씨(綿城 朴氏)와 본관 무안 박씨(務安 朴氏)의 족보를 통칭하여 무안 박씨(務安 朴氏)로 불리며, 가족관계부상에서는 면성(綿城) 박씨와 무안(務安) 박씨가 구분되어 있다.
역사 편집
면성(무안) 박씨(綿城 朴氏)의 시조인 박진승(朴進昇)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34세손으로, 신라 제54대 군주 경명왕 박승영(景明王 朴昇英)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대군 박언화(完山大君 朴彦華)의 5세손이다. 박진승(朴進昇)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국자좨주(國子祭酒(국자제주))를 지냈으며 국속을 기자8조로 교화한 공(功)을 세워 무안(務安)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다.
박진승의 아들 박섬(朴暹)이 남행(南行)하는 현종(顯宗)을 호종(扈從)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1052년(문종 6) 공신각상에 도형(圖形)되었다.
박승중 - 고려전기 해동비록, 시정책요 등을 편찬한 문신으로,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로서 상정관(詳定官)이 되어 예의(禮儀)를 정하였으며, 인종(고려)이 즉위하자 보문각학사로 김부식(金富軾)과 더불어 ‘예종실록’의 편수관이 됨. 이자겸이 국정을 맡게 되자, 그에게 아부하여 참지정사를 거쳐 수태위(守太尉)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승진하였으나, 이자겸이 몰락하자 탄핵을 받고 울진(蔚珍)에 유배되었으며, 여러 대를 섬긴 공로가 참작되어 무안에 안거함.
(무안박씨)는 조선시대 25명의 문과급제자, 63명의 무과급제자, 사마시(진사)급제자 58명을 배출하였다.
본관 편집
무안(務安)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때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성종 때 다시 무안으로 고쳤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무안현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면천(綿川)·면성(綿城) 등의 고호(古號)가 있었다. 1895년(조선 고종 32) 무안군이 되었으며 1897년 무안부(務安府)로 승격되었고, 1914년 목포부(木浦府)가 분리되면서, 나머지 지방은 무안군이 되었다. 무안(務安) 박씨는 본관 면성 박씨(綿城 朴氏)와 본관 무안 박씨(務安 朴氏)의 족보를 통칭하여 무안 박씨(務安 朴氏)로 불리며, 가족관계부상에서는 면성(綿城) 박씨와 무안(務安) 박씨가 구분되어 있다.
분파 편집
인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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