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공화원비

민혜공화원비 보르지기트씨(敏惠恭和元妃 博尔济吉特氏, 1609년 ~ 1641년)는 청 제국 숭덕제의 후비이다. 그녀의 이름은 보르지기트 하르졸(博爾濟吉特 海蘭珠, 만주어: ᠪᠣᡵᠵᡳᡤᡳ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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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jigit Harjol)이다.

민혜공화원비 박이제길특씨
敏惠恭和元妃 博爾濟吉特氏
후궁(後宮)
이름
박이제길특 해란주
博爾濟吉特 海蘭珠
신상정보
출생일 1609년
출생지 청나라 청나라
사망일 1641년 (32세)
사망지 청나라 청나라
왕조 청나라 청나라
배우자 숭덕제
자녀 1남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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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졸은 코르친 몽골의 버이러 자이사이 노얀의 딸로써, 홍 타이지의 정후 효단문황후 보르지기트 저저의 질녀이자 순치제의 모후 효장문황후 보르지기트 붐부타이의 언니이다.

청 제국이 건국되기 전, 후금과 몽골 코르친 부족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후금의 한인 누르가치의 여덟 째 아들 홍 타이지와 코르친 부족의 버이러(부족장) 자이사이 노얀의 여동생이 혼인하였는데 이 여인이 훗날 효단문황후로 등극하는 저르저르이다. 그러나 대복진(정실 중 으뜸 부인. 대부인) 철철이 시집온지 11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고 과이심 부족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다른 부족 출신의 계복진(=정실)[1]인 우라나라씨가 홍 타이지의 장남 아이신기오로 호오거과 차남 낙격, 다른 계복진인 뇨후루씨가 삼남 낙박회를 생산하자 저저은 위기를 느꼈다. 이후 홍타이지누르하치의 유력 후계자로 지목되기에 이르자 저저과 철철의 오빠 채상은 논의 끝에 1625년 채상의 딸 붐부타이(훗날 효장문황후)를 홍 타이지의 측복진(측실. 양첩)으로 보낸다. 시집 온 붐부타이는 곧 회임을 하였지만 저저와 마찬가지로 딸을 낳았다.

1626년, 누르가치가 사망하자 여러 부족의 버이러들과 연합한 홍 타이지누르가치대복진 아바하이(도르곤의 생모)를 압박해 자진토록 하고 한의 자리에 올랐다. 이때 서복진(=비첩) 안찰 씨가 홍타이지의 사남 엽포서를 낳았고, 측복진(=양첩) 예허나라씨는 오남 석색을 낳았으며, 한이 된 홍 타이지에겐 점점 더 처첩이 늘어났다. 불안해진 저저과 코르친 부족의 새 버이러 오극선(포목모태의 오빠)은 붐부타이를 포기하고 코르친 부족의 세 번째 여인을 보내는데, 그녀가 바로 붐부타이의 친언니인 하르졸이다. 이때 당시 하르졸은 26세로 이미 한 번 혼인을 했던 상태였다.

코르친 부족의 위치와 아들을 낳지 못한 저저의 대복진 자리의 보존을 위해 홍 타이지의 측복진이 된 하르졸은 홍 타이지의 총애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총애가 지나쳐 홍타이지가 하르졸에게 진정한 사랑을 갖게 되니 저저는 해란주를 견제하게 된다. 홍 타이지는 해란주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홍 타이지의 부인이 된 붐부타이보다 높은 지위인 계복진으로 격상했으며, 1636년 황제로 등극한 홍 타이지는 명나라의 후비제도를 차용해 부인들의 작위를 수정하며 대복진인 저저를 중청녕궁국군복진(中淸寧宫國君福晉, 만주어: ᡩᡠᠯᡳᠮᠪᠠ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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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libmai Genggiyen Elhe Booi Gurun i Ejen Fujin)으로 삼고, 하르졸을 동관저궁신비(東關雎宮宸妃, 만주어: ᡩᡝᡵᡤ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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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gi Hūwaliyasun Doronggo Booi Hanciki Amba Fujin)로, 붐부타이를 서측영복궁장비(西側永福宮莊妃, 만주어: ᠸᠠᡵᡤ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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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gi Ashan-i Hūturingga Booi Jingji Fujin)로 삼았는데, 동(東)이 서(西)보다 상위이며 신(宸)은 황제의 시호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르졸의 거처인 관저궁(關雎宮, 만주어: ᡥᡡᠸᠠᠯᡳᠶᠠᠰᡠ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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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ūwaliyasun Doronggo Gung의 궁호는 홍 타이지가 직접 지어 친필로 간판을 써준 것으로, 시경에 나오는 애정시인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 울음 우는 물수리는 강가에 있고,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짝이라네)"라는 의미가 담겼다.

1637년 하르졸이 회임을 하자 하르졸이 아들을 낳으면 황후의 자리를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저저은 붐부타이와 다시 연합하여 홍 타이지에게 하르졸이 임신 중이니 황제를 모실 수 없다며 대신 붐부타이가 밤 수발을 들도록 한다. 비록 붐부타이는 하르졸에게서 홍 타이지의 총애를 뺏는데 실패하였지만 이 기회로 회임을 하게 되어 1638년 1월, 훗날 홍 타이지의 뒤를 이어 황제로 등극하는 순치제를 낳는다.

1637년 음력 7월 8일(양력 8월 27일), 하르졸가 홍 타이지의 팔남을 출산하자 저저가 우려했던대로 홍 타이지는 크게 기뻐하며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처음으로 태어난 아들이니 진정한 황제의 장자라며 전국에 대사면을 선포하고, 아직 이름도 없는 갓난아이를 황태자로 선포하였다. 또한 이 아들의 이름을 다른 아들처럼 가볍게 지을 수 없다며 학식이 뛰어난 유학자들을 모아놓고 아들의 이름을 논의하였다.[2] 그러나 다음 해인 1638년 음력 1월 28일(양력 3월 13일), 붐부타이가 훗날 순치제가 되는 홍 타이지의 구남을 출산하기 불과 이틀 전에 하르졸이 낳은 황태자가 돌연 급사하였다. 또한, 하르졸도 급병을 얻게 되어 1641년에 돌연 세상을 떠났다. 당시 홍 타이지는 명나라 금주성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하르졸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뒤로한 채 5일 밤낮 달려 묵던에 닿았지만 이미 하르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실신하여 다섯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본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울다가 죽은 줄 알았다고 전한다. 하르졸을 잃은 그의 슬픔은 거의 병적이 되어 그녀를 위해 국상을 지냈고 그 기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은 친왕 두 명을 처벌하기도 했다. 신비(宸妃) 하르졸의의 비호(妃號)를 원비(元妃)로 격을 올리고 민혜공화의 시호를 내려 최고 후궁으로 격상하였다.

이후 홍 타이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끊임없이 '짐은 평생 백성들과 세상을 돌보며 살아왔는데 한 여인은 돌보지 못하였다!'라고 탄식하였으며, 하르졸이 죽고 2년 뒤, 건강이 점점 나빠진 홍 타이지는 황후 저저의 궁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하르졸을 향한 홍 타이지의 순애보는 붐부타이가 낳은 아들 순치제의 순애보[3]와 함께 청사(淸史)를 대표하는 3대 로맨스로 꼽힌다.

출처 및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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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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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 애신각라씨

본가 박이제길특씨

  • 조부: 과이심패륵 화석복친왕 망고사(科爾沁貝勒 和碩福親王 莽古思)
  • 조모: 화석복비(和碩福妃)
    • 아버지: 과이심부패륵 화석충친왕 채상(科爾沁部貝勒 和碩忠親王 寨桑)
    • 어머니: 현비 박례(賢妃 博禮)
      • 오빠: 탁례극도친왕 오극선(卓禮克圖親王 吳克善)
      • 동생: 효장문황후 박이제길특씨(孝莊文皇后 博尔吉济特氏,1613 - 1688) - 숭덕제의 서후
        • 조카: 4황녀 고륜옹목공주(固倫雍穆公主, 1629 - 1678)
        • 조카사위: 과이심부 박이제길특 필이탑합이(果爾沁部 博爾濟吉特 弼爾塔哈爾, ?~1667)
          • 조카손자 : 찰살극다라군왕 악제이(札薩克多羅郡王 鄂齊爾)
        • 조카: 5황녀 고륜숙혜공주(固倫淑慧公主, 1632 - 1700)
        • 조카사위 : 색이합(索爾哈)
        • 조카사위 : 파림부 박이제길특 색포등(巴林部 博爾濟吉特 色布騰, ?~1668)
        • 조카: 7황녀 고륜단헌공주(固倫端獻公主, 1633 - 1648)
        • 조카사위: 박이제길특 견길이격(博爾濟吉特 堅吉爾格)
        • 조카: 세조 순치장황제(世祖 順治章皇帝, 1638 - 1661 재위:1643 - 1661)
      • 고모: 효단문황후 박이제길특씨(孝端文皇后 博尔吉济特氏, 1600~1649) - 숭덕제의 적후
        • 고종사촌: 2황녀 고륜온장공주(固倫溫莊公主, 1625~1663)
        • 고종사촌: 3황녀 고륜정단공주(固倫靖端公主, 1628~1686)
        • 고종사촌: 8황녀 고륜단정공주(固倫端貞公主, 1634~169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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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진족과 몽골족은 일부다처제이다.
  2. 반면 붐부타이가 낳은 아들인 순치제가 푸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건 붐부타이의 거처인 영복궁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3. 순치제 또한 외가인 코르친 부족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후궁인 동악비를 유난히 사랑하였으며, 유산의 충격으로 곧 사망한 동악비를 따라가듯 순치제 또한 곧 서거하였는데 이에 대해 민간에선 순치제가 정인을 죽인 황궁을 떠나 승려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전설을 배경으로 홍콩의 유명 작가 김용이 대하소설 녹정기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