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길 (야구인)

대한민국의 야구인

박영길 (朴永吉, 1941년 11월 5일 ~ )은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이었다. 외야수 출신 감독 중 드물게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감독이지만, 자신의 야구관을 선수들에게 너무 강요한 탓인지 선수들한테 인기가 없었다[1]. 한편, 김일융의 일본 복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의 이유 탓인지 투수력이 붕괴되어[2]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했으며 이에 삼성은 1988년 2월 16일부터 장명부를 1년 계약 형식으로 2군 투수코치 영입했고[3] 그 덕에 장명부는 본인(박영길)이 1990년 시즌 후 태평양 감독에 부임할 당시 투수코치로 영입될 예정이었지만[4]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됐는데 본인(박영길)은 태평양 감독 부임 과정에서 장명부 투수코치 영입이 실패한 것 외에도 기존 코치진 유임을 밝혔으나[5] 이들은 전임 김성근 감독이 길러놓은 사람들이라 원만한 팀운영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기존 코치진 중에서는 박용진 코치만 퇴진시키는 데[6] 그쳤다. 게다가, 다음 해인 1988년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적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이 말은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렀으며 결국 임기를 1년 남겨두고[7] 도중하차했다. 그 뒤, 1990년 11월 3일부터 4년 임기 형식으로 태평양 돌핀스 감독에 부임하여[8] 현장에 복귀했는데 기존 코치진 유임을 밝혔으나[9] 이들은 전임 김성근 감독이 길러놓은 사람들이라 원만한 팀운영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김진영 감독이 1989년 11월 9일부터[10] 2년 계약 형식을 통해 롯데 감독을 맡으면서 같은 달 30일부터 1년 계약으로 롯데 투수코치를 맡았지만[11] 김진영 감독이 1990년 초반 한때 상위권을 질주했음에도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당초 구상과는 달리 중반 이후 서서히 등판시키겠다던 박동희를 선발-마무리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투입시켰고 이 때문에 정작 승부처인 후반기 이후부터 힘을 쓰지 못하여[12] 시즌 도중 해임된 데다 같은 해 말 강병철 감독이 재부임하면서 소위 '김진영 라인' 지우기에 따라 퇴출된[13] 장명부 투수코치 영입도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됐으며 김진영 감독은 1990년 이후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본인(박영길)이 태평양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기존 코치들 중 박용진 코치만 퇴진시킨 대신[14] 신용균 수석코치 등 기존 인물에 이선덕 전 OB 2군감독, 이홍범 OB 코치, 성기영 전 롯데 감독을 새롭게 보강했다. 게다가, 본인(박영길)이 기존 '김성근 사단'의 일원인 신용균 수석코치와 불화를 빚어[15] 전체 코칭스태프가 동요하는 바람에 계약기간을 3년 남기고 감독직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박영길 감독의 중도해임 과정에서 '김성근 사단'의 또다른 잔류멤버인 신용균 (수석) 최주억 (1군 수비) 이종도 (1군 주루) 박상열 (2군 투수) 김대진 (2군 타격) 이근식 (2군 타격보조) 코치 등이 팀을 떠났고 정동진 전 삼성 감독이 부임하면서 이선덕 1군 투수코치가 2군감독, 성기영 2군감독이 1.5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한때 김시진 투수코치 영입설이 있었으나 태평양 측에서 대구 출신 코치들이 많다는 이유로 좌절됐고[16] 대신 정동진 감독과 함께 대구상고-제일은행 시절 선수생활을 같이 한[17] 류영수 삼성 2군감독을 수석-투수코치, 오대석 전 롯데 선수를 1군 수비코치, 김진영 감독이 1989년 11월 9일부터[18] 2년 계약 형식으로 롯데 감독을 맡아 이 팀 코치로 현장에 돌아왔지만 김진영 감독이 1990년 초반 한때 상위권을 질주했음에도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당초 구상과는 달리 중반 이후 서서히 등판시키겠다던 박동희를 선발-마무리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투입시킨 것 탓인지 승부처인 후반기 이후부터 힘을 쓰지 못하여[19] 시즌 도중 해임된 데다 같은 해 말 강병철 감독이 재부임하면서 소위 '김진영 라인' 지우기에 따라 퇴출된[20] 김무관 전 롯데 코치를 2군 타격코치로 영입했으며 정진호 2군 수비코치가 1군 주루-작전코치, 정영기 플레잉코치가 2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다만, 정동진 감독 부임 과정에서 류영수 오대석 김무관 코치 영입 문제를 놓고 세 사람의 전 소속인 삼성롯데 측으로부터 반발을 사야 했다[21].


경력 편집

각주 편집

  1. 최영호 (1999년 3월 2일). “[삼성라이온즈 18년 . 3] 박영길 감독”. 영남일보. 2020년 3월 22일에 확인함. 
  2. '87프로야구 絕對强者(절대강자)는 없다”. 동아일보. 1987년 3월 3일. 2019년 4월 8일에 확인함. 
  3. “장명부, 삼성 2군 코치로 간다”. 중앙일보. 1988년 2월 17일.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4.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5.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6. 연합 (1990년 12월 3일). “프로야구 코칭스탭윤곽 거의 드러나”. 연합뉴스.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7. 최영호 (1999년 3월 2일). “[삼성라이온즈 18년 . 3] 박영길 감독”. 영남일보. 2020년 3월 22일에 확인함. 
  8. “태평양 새감독 박영길씨 취임”. 한겨레신문. 1990년 11월 4일.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9.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0. “巨人(거인)—金振榮(김진영)감독 정식 계약 기간 2년에 연봉 5,000만원 수비코치엔 權斗祚(권두조)씨”. 동아일보. 1989년 11월 10일.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1. “장명부,롯데 투수코치로”. 한겨레신문. 1989년 12월 1일.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2. 권오중 (1990년 10월 14일). “올 시즌 하위 3개팀 태평양·롯데·OB 코칭 스태프 물갈이로 "재정비". 중앙일보.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3.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4. 연합 (1990년 12월 3일). “프로야구 코칭스탭윤곽 거의 드러나”. 연합뉴스.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5. “太平洋(태평양)감독 丁(정)동진씨 3년임기 계약금·年俸(연봉) 1億(억)2千萬(천만)원”. 경향신문. 1991년 10월 15일. 2020년 6월 18일에 확인함. 
  16. “다이아몬드 쌍방울,투수成영재등 2차지명”. 문화일보. 1992년 11월 24일.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7. 연합 (1991년 10월 24일). “돌핀스, 수석코치에 柳永洙씨 내정”. 연합뉴스.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18. “巨人(거인)—金振榮(김진영)감독 정식 계약 기간 2년에 연봉 5,000만원 수비코치엔 權斗祚(권두조)씨”. 동아일보. 1989년 11월 10일.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19. 권오중 (1990년 10월 14일). “올 시즌 하위 3개팀 태평양·롯데·OB 코칭 스태프 물갈이로 "재정비". 중앙일보.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20.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21. 연합 (1991년 11월 18일). “<프로야구 화제>-코칭스태프 재정비 활발”. 연합뉴스. 2020년 9월 18일에 확인함. 
전임
김성근
제3대 태평양 돌핀스 감독
1990.11.1 - 1991.10.22
후임
정동진
전임
정동진 (대행)
제4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6.11.24 - 1988.11.15 (216경기 120승 94패 2무)
후임
정동진
전임
-
제1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82. - 1983.7.5 (130경기 53승 76패 1무)
후임
강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