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1930년)

박종규(한국 한자: 朴鐘圭, 1930년 5월 28일~1985년 12월 3일)는 대한민국의 군인·정치인·체육행정가였으며, 사립대학 경남대학교 관련 교육재단인이었었다. (號)는 마산(馬山)·산은(汕隱)이고, 본관밀양(密陽). 대한민국 헌정사 사상 역대 중앙 경호 책임자 중에서는 최장기로 임기를 재임한, 최장수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실장이었던 그는, 5·16 군사정변을 비롯한 박정희의 경호 최측근 등으로 활약하면서 권력을 휘둘렸다.

박종규
1966년 2월 9일 (1966-02-09) 당시의 박종규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실장
1966년 2월 9일 (1966-02-09) 당시의
박종규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실장
대한민국의 제2대 대통령 경호실 실장
임기 1964년 5월 17일 ~ 1974년 8월 21일
전임 홍종철
후임 차지철
대통령 박정희
총리 정일권
백두진
김종필

이름
별명 (號)는 마산(馬山)·산은(汕隱)
별명: 피스톨 박
신상정보
출생일 1930년 5월 28일(1930-05-28)
출생지 일본 교토[1]
거주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사망일 1985년 12월 3일(1985-12-03)(55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국적 대한민국
학력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1972년)
경력 제10대 초선 국회의원
정당 무소속
본관 밀양
형제자매 3남 3녀 중 차남
(그 중 막내 남동생 박재규)
배우자 이종원
자녀 2남
친인척 김선향(막내 제수)
종교 불교
웹사이트 박종규 - 대한민국헌정회
박종규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5년 3월 29일 ~ 1963년 12월 24일
근무 중앙정보부 기획관리조정실 GT경호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 경호대
대통령 경호실
최종계급 대한민국 육군 대령
지휘 중정 기조실 GT경호대 수석경호장교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 경호대장
대통령 경호실 차장
주요 참전 한국 전쟁
상훈 대한체육훈장

1930년 5월 28일, 일본 교토의 재일 조선인 거류민 집안에서, 대한제국 경상남도 마산이 고향인 아버지·대한제국 경상남도 밀양이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 3녀 중 차남이자 셋째로 출생하였으며, 1932년 아버지·어머니·형·누나와 함께 일본 교토에서부터 부산항 귀국선(釜山港 歸國船)을 타고 잠시 귀국하여, 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1년 동안의 유아 시절을 보낸 적이 있고, 이듬해 1933년 또다시 부모와 형제자매(그의 형과 누나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남.)를 따라 일본 교토에 재차 건너가 성장하였으며, 1942년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두 누이동생이 먼저 일본 교토를 마지막으로 떠나가면서, 일제 시대 부산항 귀국선을 타고서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으로 먼저 귀국하고, 그와 형은 일본 도쿄 유학 학업을 모두 마치겠다는 취지로써 1945년 3월 29일 목요일, 일본 도쿄 육군항공학교를 일단 수료함으로써, 일본 육군 하사로 임관하여, 결국 1945년 8월 15일, 을유 광복 때까지 귀국을 하지 않고 있다가, 1945년 8월 15일 (1945-08-15), 일본 도쿄에서 을유 광복 목도 이후 달포 남짓 지난 1945년 9월 22일 (1945-09-22) 새벽에, 형과 함께 일본 도쿄를 떠나는 등, 아울러 경상남도(慶尙南道)의 통영(統營)의 충무항 귀국선(忠武港 歸國船)으로 통하여 귀거(1945년 9월 22일 (1945-09-22) 귀국)하면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귀국한 뒤, 1947년 8월,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였다. 육군 부사관(국방경비대 하사관)으로 복무 중 육군종합행정학교 제5기로 입교,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이때 미군정 국방부인 통위부 시절 박정희 소령 밑에서 부하 장교로 근무를 했다.

1952년 정치대학교(지금의 건국대학교)의 정치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55년 미국 육군보병학교를, 1956년 미국 육군공수학교를 나왔으며, 196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69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1972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거듭 받았고, 그 뒤 자유중화민국 타이완 문화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대장으로서 5·16 군사정변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 뒤 쿠데타로 성공적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지시로 인하여 1963년 12월 24일 화요일, 육군 대령으로 예편해, 이듬해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부임한 뒤, 1964년 5월부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국내 최장기간인 무려 10년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았으나,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에서 영부인 육영수문세광에게 피살되자 이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1970년에는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삼양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71년 마산대학교를 인수하여 경남대학교를 설립했다. "피스톨 박(사실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권총을 겨누어서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 일반에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이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격을 좋아했었던 그는 1970년 대한사격연맹 총재와 아시아사격연맹 총재를 지냈으며, 1979년에는 국제사격연합회 부회장으로까지 취임하였다. 또 1978년에는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유치를 하는데 앞장섰으며, 1979년 2월 15일 제25대 대한체육회 회장이 되어 올림픽유치에 힘을 쏟았다. 체육훈장을 받았고, 마산·진해·창원 지역구에서 제10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0년 5·17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 이후 김종필, 이후락 등과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정계에서 은퇴했다.(6월 18일 계엄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부정축재액은 77억 3,342만원이었다.[2]) 역시 3월 26일 학생들의 반발로 그가 세운 학교인 경남대학교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동생인 박재규(당시 만36세)가 이사장에 취임했다.[3]

1984년 국제올림픽의원회(IOC) 위원으로 선출하였고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년 뒤인 1985년 12월 3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학력 편집

명예 박사 학위 편집

가족 관계 편집

박종규를 연기한 배우들 편집

TV 드라마 편집

각주 편집

  1. 출생지는 일본 교토 지역이지만, 친가 선대의 본적은 경상남도 창원군.
  2. 전두환 정권의 탄생 Archived 2013년 12월 11일 - 웨이백 머신, 프레시안, 2011년 5월 23일,
  3. 박종규씨 사퇴, 경남대 이사장 박재규씨 선임, 경향신문 1980년 3월 26일

외부 링크 편집

전임
홍종철
제2대 대통령경호실장
1964년 5월 17일~1974년 8월 21일
후임
차지철
  전임
이도환·황낙주
제10대 국회의원(마산시·진해시·창원군)
1979년 3월 12일~1980년 7월 4일
민주공화당무소속
황낙주
후임
(마산시)조정제·백찬기
(창원시·진해시·의창군)배명국·김종하
 
전임
김택수
제25대 대한체육회 회장
1979년 2월 15일~1980년 7월 13일
후임
조상호